국내 2위 철강사이자, 삼성전자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인 현대제철이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발전소와 직접 협상을 벌여 전기를 사는 ‘전력 직접 구매 제도’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약 3년 6개월 사이 70% 안팎 오른 산업용 전기료 부담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현대제철까지 가세하면서 전력 직구 신청 사업장은 전국 20곳으로 늘어났다.
26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이 전력거래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최근 전력거래소에 전력 직구를 위한 거래자 등록 신청서를 제출했다. 현대제철은 2023년과 작년 2년 연속 전기료만 연 1조원을 냈다. 건설 경기 부진으로 철강 수요가 줄자, 이 회사 전력 사용량은 2023년 6904GWh(기가와트시)에서 지난해 6140GWh로 11% 감소했다. 하지만 전기를 덜 썼는데도 산업용 전기 요금이 오르며 비용 부담이 줄지 않자 결국 전력 직구 검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전력 직구 제도를 통하면 한전에서 살 때보다 kWh(킬로와트시)당 20~30원 싸게 전기를 살 수 있다. 현대제철 입장에선 작년 기준 연간 약 1228억~1842억원을 아낄 수 있는 셈이다.
전력 직구 바람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SK어드밴스드, LG화학, SK인천석유화학, 한화솔루션 등 석유화학 기업들의 사업장 중심으로 전력 직구 신청이 이뤄졌는데, 점차 철강과 비철금속 제련, 배터리 양극재, 유리·건자재, 산업용 가스 등으로 업종이 다양해지는 추세다. 한국철도공사, 삼성전기, 디아이지에어가스, KCC글라스, 재세능원 등도 전력 직구를 희망하고 있다.
전력 직구 신청 기업이 지금처럼 계속 늘면서 한국전력은 난감한 처지가 됐다. 한전은 올 3분기 기준 부채가 205조3402억원에 달해 정부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재무 건전성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한전은 전력 판매 수입의 절반 이상이 산업용 전기 요금에서 나오고 있어, ‘고객’들이 전력 직구로 이탈할 경우 재무 구조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