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25일 “SK하이닉스의 수출 실적이 ‘국가 성장 엔진’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SK의 국가 경제 기여를 강조하고 나섰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올 1~3분기 낸 법인세만 4조3000억원에 달한다는 점, 시가총액이 300조원대를 기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태원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SK그룹은 AI, 반도체, 에너지, 바이오 등 미래 성장 사업을 중심으로 투자와 고용을 이어가며 국가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고도 했다.
재계에서는 이날 SK가 ‘국가 기여’를 강조한 것을 두고 “묘한 타이밍”이란 반응이 나온다. 현재 SK그룹이 ‘금산분리 원포인트 완화’ 논란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와 첨예하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점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대규모 투자와 관련해 ‘금산분리’ 규제가 대기업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며, 이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지주회사 산하에 투자회사(GP)를 두고 직접 펀드를 조성해 주요 산업에 투자하는 것 등이 주요 규제로 거론됐는데, 이 규제를 풀면 사실상 혜택을 보는 게 SK그룹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런 점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SK그룹이 이날 ‘국가 기여’를 강조하며 반박에 나섰다는 게 재계 해석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사실상 매년 내는 수출 기여 자료로, 다른 의미는 없다”고 했다.
◇SK하이닉스 기여 강조한 SK
이날 SK의 보도 자료는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고부가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SK하이닉스의 경영 실적은 국가 경제 전반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재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투자를 할 수 있게 규제를 대폭 완화해 줘야 한다는 요구로 읽힌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AI 투자를 가로막는 금산 분리 규제를 푸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다. 여당도 이에 부응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규제 완화의 직접 수혜자가 사실상 SK그룹뿐이라는 여론이 불거졌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체제도 아니고 보유 현금이 100조원이 넘어 급할 게 없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자체 현금 창출력만으로는 매년 수십조 원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를 감당하기 버겁다. 그룹 전 계열사에 걸친 높은 차입 의존도, SK하이닉스 외 주력 계열사 실적 부진 등이 겹쳐 규제 완화가 절박한 처지다.
◇SK하이닉스 의존 확대는 부담
SK그룹은 SK하이닉스가 사실상 그룹 전체를 먹여 살리는 ‘외발자전거’ 신세다. 올해 그룹 전체 수출에서 SK하이닉스 비율이 64.6%였다. 나머지 계열사 수출은 오히려 12.4% 감소했다. SK텔레콤은 해킹 사태와 임원 감축설로 뒤숭숭하고, 배터리 계열사 SK온은 ‘돈 먹는 하마’ 신세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1강(强)과 부진한 나머지라는 극단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어 하이닉스 성장에 제동이 걸리면 그룹 전체 성장 전략이 흔들리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급박함은 최고 경영진 인사에서도 드러난다. SK는 이형희 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이 신임 부회장은 대관통으로 현 여권 핵심부와 끈끈한 네트워크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SK는 또 판사 출신 정재헌 사장을 SK텔레콤 대표로 임명했다. 정계와 법조계에 줄을 댈 수 있는 인물들을 그룹의 간판으로 내세운 것이다. 실적 부진과 구조 조정 와중에 대관 라인만 승진 잔치를 벌인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통령이 운을 띄워준 지금이 SK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인 만큼,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했다.
이번 보도 자료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건 ‘최태원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미래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대목이다. 하지만 방만했던 그간의 투자를 정리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구조 조정을 진두지휘해 온 것은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다. 내부에선 최창원 의장이 살을 도려내고 있는데, 대외적으로는 최태원 회장이 성과를 냈다고 강조한 셈이다. 재계에서는 “내부 실제 권한 구조와 최태원 회장을 앞세운 대외 메시지의 괴리가 어색하다”는 얘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