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의 ‘심장’ 역할을 하는 원자로는 보통 1년 6개월마다 뚜껑을 열어 내부의 핵연료를 교체하면서 각종 점검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원자로 헤드(뚜껑)를 제대로 열고 닫는 게 전체 정비 절차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방사능 유출 위험 때문이다. 그래서 직경 5m쯤 되는 원형의 원자로 헤드 테두리를 빼곡하게 둘러싼 볼트 수십 개를 조이고 푸는 기술은 ‘원전 정비의 꽃’으로 통한다. 볼트가 하나라도 미세하게 뒤틀려 있거나, 조여진 압력이 다르면 방사능 유출 위험이 커진다.

이 기술이 반영된 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세계에서 단 3곳. 그중 하나가 한국 기업이다. 볼트를 하나씩 조여주는 ‘SST(Single Stud Tensioner·단일 스터드 신장기)’와 볼트들을 한꺼번에 조이는 ‘MST(Multi Stud Tensioner·다중 스터드 신장기)’를 국산화한 무진기연이다. 스터드는 원자로 뚜껑을 고정하는 특수 볼트를, 신장기는 볼트를 당겨 팽팽하게 조여주는 기계를 뜻한다. 국내 원전 3분의 1, 한국 첫 수출 원전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이 모두 이 회사 장비를 쓰고 있다.

지난 6일 광주 광산구 무진기연 본사에서 만난 조성은(66) 대표는 “방사능 유출을 막으려면 수돗물 압력의 400배에 달하는 압력으로 길이 2m짜리 볼트 54개를 균질하게 조이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하다”면서 “독일이 독점하던 장비를 국산화했고 지난달에는 독일 기업을 제치고 인도 원전 수출길도 뚫었다”고 했다. 무역협회도 ‘정말 뚫기 힘든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라고 평가한다. 매출도 2022년 162억원에서 지난해 246억원으로 성장했다.

지난 6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무진기연 공장에서 조성은 대표가 원자로 헤드(뚜껑) 볼트를 조이고 푸는 'SST(Single Stud Tensioner)' 장비를 시험하고 있다. 이 장비는 국내 원전 3분의 1을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김영근 기자

◇‘기계공’에서 ‘원전 기술자’로

전남 무안 출신인 조 대표는 조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공작기계인 선반을 만드는 회사에서 12년간 ‘쇠 깎는 기술자’로 일했다. 이 분야 기술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 1989년 주문형 부품 제조를 내세워 창업을 결심했다. “당신 회사에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든 만들어 드리겠다. 자잘한 주변 기기라도 상관없다”고 편지를 써서 돌리며 영업을 시작했다. 그 무렵 전남 영광 한빛 원전 내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조 대표는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미래 에너지 산업은 원전이 주도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처음엔 원자력 발전소 터빈 받침대, 냉각수로 쓰는 바닷물을 퍼올릴 때 필요한 쓰레기 거름 장치 등 작은 설비부터 수주해 나갔다. 그러다 알게 된 부품이 SST였다. 당시에는 원자로 헤드를 조이는 장비는 거의 전부가 독일산이었고, 국산화에 나선 기업도 없었다.

2000년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3년 가까이 걸려 장비를 개발했는데 원전 운용사인 한국수력원자력 승인이 나오지 않았다. 조 대표는 해외에서 활로를 찾았다. 독일 원전 장비 전시회를 찾아가 회사 카탈로그를 돌렸는데 조 대표에게 ‘OEM(위탁생산)을 맡기고 싶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조 대표는 “한수원에 ‘우리가 수입해온 독일 업체가 도리어 우리에게 일감을 맡기겠다는데 이래도 못 믿겠냐. 우리가 20% 더 싸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결국 사업을 따냈다고 한다.

◇이제 미래 원전 산업으로

무진기연은 볼트 하나씩을 조이는 SST에 이어 여러 볼트를 동시에 균일하게 조이고 풀어야 하는 MST도 국산화에 성공했다. 더 정밀한 기술이 필요한 MST는 10년 이상 연구한 끝에 성능을 인정받고 2021년 한수원과 첫 공급 계약을 맺었다.

조 대표는 이제 미래 원전 산업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SMR(소형 모듈 원전)과 사용후 핵연료 관리, 원전 해체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를 안전하게 운반하고 저장하는 1기당 120t 규모 캐스크(사용후 핵연료를 담는 초고강도 특수용기) 제작과 SMR 부품 생산에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SMR 투자에 속도를 내는 미국 원전 기업 뉴스케일파워와 협력을 논의하고 있고 전남 영암에 1000평(약 3300㎡) 규모 ‘SMR 전용 공장’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