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을 견인해 온 중추 산업이다. 지난해 총수출액의 14.3%를 차지하며 반도체, 자동차 등에 이어 5대 ‘수출 효자’였다. 한국은 중국,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4위 에틸렌(석유화학 핵심 원료) 생산국이기도 하다.

국내 석화 ‘빅4′로 불리는 롯데케미칼, LG화학,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은 2021년까지만 해도 석유화학 사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9조원대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당시 한국의 석유화학 연간 수출액(551억달러)이 자동차(465억달러)보다 많을 정도였다.

하지만 핵심 수요처였던 중국이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대규모 증설에 나서며 경쟁자로 급부상하며 위기가 시작됐다. 단시간에 에틸렌 자급률 100%를 초과한 중국은 과잉 생산 물량을 글로벌 시장에 저가로 밀어냈다. 최근 3년간 중국이 증설한 에틸렌 설비용량은 한국 연간 생산량 1500만t을 훌쩍 뛰어넘는 2500만t에 이른다.

설상가상 한국 시장은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까지 겹쳤다. 9조원대였던 빅4의 합산 영업이익은 2021년 2조원대로 급락했고, 2023년부터는 적자 행진이 시작됐다. 4사 합계 지난해 8785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 상반기에만 이미 4752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이 범용(汎用) 중심의 양적 팽창에서 ‘고부가가치 중심’의 질적 전환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국내 산업계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올 8월부터 산업통상부 주도로 ‘석유화학 산업 구조 조정’ 논의가 시작됐다. 핵심은 공급 과잉의 주범인 NCC(나프타 분해 시설)의 총생산 능력 감축이다. 현재 1470만t에서 18~25%(270만~370만t) 감축하기 위해 연말까지 업계가 자발적으로 사업 재편안을 제출하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재편 1호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될 전망이다. 양사의 설비를 통폐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충남 대산공단 재편안이 조만간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전체적으로는 설비를 줄이지 않고 버티는 기업이 결국 수혜를 보는 구조여서 재편 속도는 더딘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고통스러운 구조 조정을 마치면 결국 중국이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석유화학 분야를 다루는 컨설팅 업계 관계자는 “대대적인 신규 증설과 공급 과잉으로 빚어진 이번 위기는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며 “버티면서 업턴(상승 사이클)을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