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전 1세대인 고리 2호기가 우여곡절 끝에 계속 운전(수명 연장)을 승인받았다. 하지만 에너지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혁명으로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만으로는 미래 전력난에 대응하기 턱없이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속도감 있는 종합 전력 수급 전략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권위 있는 국제기관들은 미래 전력 수요 폭증이 이미 현실이 됐다고 진단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망 2025’ 연례 보고서에서 “전기의 시대가 왔다(The Age of Electricity is here)”고 선언했다. 보고서는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 확산 등을 주된 요인으로 꼽으며, 글로벌 전력 수요가 2035년까지 2024년 대비 40~50% 급증할 것이라 전망했다.

보고서는 또 “원전이 돌아오고 있다(Nuclear power is making a comeback)”고 진단했다. 40여 국이 원전을 에너지 전략에 다시 포함했고, 현재 건설 중인 세계 신규 원전 용량은 30년 만에 최고 수준이며, 세계 원전 총 설비 용량은 2035년까지 최소 35%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세계 각국의 원전 회귀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미국은 기존 원전의 수명을 최대 80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영국은 소형모듈원자로(SMR)를 2030년대 초반 상용화를 목표로, 2029년까지 첫 SMR을 착공하기로 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폐쇄했던 원전 33기 가운데 12기를 재가동 완료했으며, 17기에 대해서는 재가동을 위한 안전 심사가 진행 중이다.

반면 국내 원전 산업은 ‘운전 중단 임박, 재가동 불확실, 신규 건설 미정’이라는 세 가지 어려움을 동시에 겪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원전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 대해 “국민 공론화를 거쳐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신규 원전 2기와 소형 모듈 원자로(SMR) 건설 계획을 이미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추진조차 불확실한 셈이다. 에너지 업계 고위 관계자는 “전 세계가 AI발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해 원전 회귀를 선언하는데, 한국만 ‘공론화’를 운운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원전 계속 운전 심사를 가속화하고 신규 원전 건설 관련 불확실성을 해소해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하고 AI 시대 전력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력망 혁신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