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지난 7일 삼성전자가 정현호(65) 부회장의 용퇴를 핵심으로 하는 인사를 전격 단행하면서, 연말 인사철에 돌입한 재계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질 전망이다. 삼성은 국정 농단 사건 이후 약 8년 만에 삼성전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상설화하고 초대 실장에 박학규 사장을 임명했다. 뒤이을 인사에서도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된다. 사법 리스크를 벗은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과 이를 뒷받침할 새 2인자의 조합에서 파격 인사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른 주요 그룹도 올 연말 변화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재계의 가장 큰 화두는 ‘선제 대응’이다. 트럼프발 관세 충격, 중국과의 경쟁으로 인해 대외 경영 환경은 악화일로다. 국내에서도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 통과에 따른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인공지능) 전환에 대한 사업적 절박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를 미리 읽어내고 국내외 정세에 기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커진 각 그룹이 핵심 보직에 더 ‘젊은 피’를 기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삼성·SK는 더 젊고 과감하게

삼성전자의 경우 노태문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직무대행 사장이 ‘직무대행’ 직함을 떼고 부회장으로 승진할지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다. 그가 부회장이 되면 삼성 내에선 비교적 ‘젊은 부회장’이 등장하는 셈이다. 노 사장이 모바일경험(MX) 사업부장과 품질혁신위원장까지 맡고 있어, 노 사장에 대한 인사가 연쇄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SK는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취임 이후 3년째 세대교체가 키워드다. 지난달 30일 사장단 인사에서도 50대 초중반 인사들이 약진하며 계열사 사장 진용이 예전보다 3~4세 안팎 젊어졌다. 최태원 회장 비서실을 이끌던 만 49세인 김정규 SK스퀘어 사장이 새로 승진·임명됐고, 유정준(62) 부회장이 내려놓은 SK온 대표이사직에 이용욱(58) SK실트론 사장이 임명됐다. 최태원 회장 신임 비서실장에 1980년생 류병훈 SK하이닉스 미래전략 담당 부사장이 내정된 것도 주목된다.

이런 CEO급 세대 교체는 동시에 연말 인사에서 각 계열사의 변화로 나타날 전망이다. 특히 SK텔레콤이 이르면 이번 주 임원을 대규모 감축하고, 조직을 통폐합하는 쇄신 인사를 가장 먼저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LG는 위기 돌파 전략

현대차그룹 내부에선 지난달 29일 그룹 광고 계열사 이노션 대표이사 사장에 1973년생 김정아 부사장이 승진·임명된 것을 변화의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1959년생 이용우 전 대표보다 무려 열네 살 젊은 여성 대표의 발탁이다. 이전까지 그룹 내 다른 계열사 출신을 앉혔던 자리를 내부 인사를 승진 발령한 것을 두고도 ‘실력 있는 젊은 피’로 변화에 대응한다는 정의선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반응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취임 직후를 빼면 지난 5년간 세대교체라 할 만한 대규모 인사가 없었다. 특히 올해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관세가 기존 0%에서 15%로 오르는 대형 악재를 맞았다. 위기 대응 차원에서, 연말 인사 폭이 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주력인 전자·석유화학·배터리 등이 중국과 경합하며 고전하고 있는 LG는 현재 구광모 회장과 계열사 사장들이 내년 전략 마련을 위한 사업 보고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ABC(AI·바이오·클린테크)’ 등 미래 성장 동력 중심으로 인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룹 외부에선 조주완 LG전자 사장과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의 승진 여부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룹 실적 자체가 부진한 상황보다는 젊은 인재 발탁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