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확정을 앞두고, 철강·화학·시멘트 등 산업계가 급격한 친환경 규제 드라이브에 반발하고 나섰다. 산업 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과속 규제‘가 경쟁력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철강협회, 한국화학산업협회, 한국시멘트협회 등 8개 업종별 협회는 지난 4일 “정부 계획대로면 2026년부터 5년간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권 구입 부담이 5조원이나 늘어난다“며 ”실행할 수 있는 NDC를 설정하고 온실가스 총 배출 허용량도 과도하게 줄이지 말라”는 내용의 공동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이 일정 기준 이상인 기업들에게 배출권을 할당하고 이를 초과하면 배출권을 사도록 하고 있는데, NDC 감축 목표가 강할수록 배출권 비용 부담도 필연적으로 커지는 구조다.

◇제조업계 “배출권 구매에 5조원 더 들어“

정부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최소 48%에서 최대 65%까지 감축하는 네 가지 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산업계는 공동 건의문에서 “국내 제조업은 중국발 공급과잉, 주요국 관세 인상, 내수 침체 장기화 등으로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라며 “정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NDC는 산업 경쟁력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발의 핵심은 ‘속도‘와 ‘비용’ 문제다. 한국은 철강, 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형 제조업 비중이 높은 산업 구조여서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감축 난이도가 월등히 높다. 그럼에도 급격한 감축 목표가 하달되면서 배출권을 사야 하는 기업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6~2030년 온실가스 총 배출 허용량을 이전 5년 대비 약 16% 줄일 방침이다. 이 경우 철강·정유·시멘트·석유화학 4개 업종에서만 배출권 구매에 총 5조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한다는 게 업계 추산이다. 2035년 NDC까지 높게 설정되면 비용 부담은 통제 불능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정부는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추세를 고려하면 구매 비용이 과장됐다’는 입장이지만, 산업계는 탄소 감축 기술 상용화가 아직 초기 단계인 현실을 무시한 목표 설정이라고 반박한다.

이 같은 갈등은 문재인 정부가 2030년 NDC를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급격히 올린 데 따른 연장선에 있다.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는 실제 달성 가능한 수준보다 2배 이상 과도하게 책정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자동차업계, 항공업계도 비상

자동차와 항공업계도 환경 규제 폭탄으로 비상이다. 자동차업계는 정부가 제시한 ‘2035년 무공해차 보급 목표 840만~980만대(전체 자동차의 30~35%)‘가 사실상 내연기관차 퇴출 수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는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과 함께 “대규모 고용 감소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대정부 공동 건의문을 냈다. 고용 충격이 예상되자 노동계까지 가세한 것이다.

항공업계는 정부가 지난 9월 공식화한 ‘SAF(지속가능항공유)’ 도입 의무화에 긴장하고 있다. SAF는 폐식용유, 생활 폐기물 등을 원료로 한 친환경 연료로, 일반 항공유보다 2.5배 비싸다. 정부는 2027년부터 국내 출발 항공편에 SAF를 최소 1% 이상 혼합 사용하도록 하고 2035년 1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연료비가 항공사 전체 비용의 30%인데 SAF 사용에 따른 부담을 덜어줄 지원책이 없으면 항공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는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줄일지 자발적으로 설정해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하는 수치다. 처벌 조항이 없어 구속력은 없지만, 파리협정 참여국은 5년마다 종전보다 더 엄격한 감축 목표를 밝히기로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