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해군의 차세대 3600t급 잠수함 장영실함의 진수(進水)식이 열렸다. 최대 60조원 규모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독일과 경쟁하는 한국 원팀의 수출형 모델이다. 최근 방한한 캐나다 총리, 해군사령관 등 고위 관계자가 직접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장영실함을 둘러보기도 했다. /김동환 기자

지난달 27일 경주 APEC 비공개 포럼에 참석한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는 참석자 300여 명 앞에서 “영국 정부는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한화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곧 낼 것”이라고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을 두고 한국과 독일이 최종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나온 깜짝 지지 선언이었다. 영국 방산 업체 배브콕(Babcock)은 현재 캐나다 해군의 ‘빅토리아급 잠수함’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데, 한화오션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이번 입찰에서 사실상 ‘원팀’ 우군으로 지원하고 있다. 업계에선 영국의 지지는 캐나다와 밀접한 경제·안보 협력 관계를 고려할 때, 독일·노르웨이 연합을 견제하는 강력한 지원 사격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캐나다는 이번 사업을 통해 최대 12척의 디젤 배터리 추진 잠수함을 도입한다. 지난 8월 말 입찰에서 한국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원팀’과 독일의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즈(TKMS)가 최종 후보가 됐다. 잠수함 건조뿐 아니라 향후 20~30년 이어질 유지·보수·정비(MRO)까지 합산하면 총 사업 규모가 최대 6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속도’를, 독일은 ‘동맹’을 강조하면서 최종 낙점을 노리고 있다. 한국 원팀은 캐나다의 전력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한국의 생산 생태계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독일 측은 잠수함 협력국인 노르웨이까지 거론하며 캐나다 상대로 나토(NATO) 동맹 네트워크를 앞세운다. 영국의 지지 선언은 이런 독일 전략에 맞선 한국의 카드인 셈이다.

◇英 대사 “한화 지지”… APEC 포럼서 깜짝 건배사

캐나다의 검증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근 폐막한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때 최종 결정권을 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한화오션의 거제 조선소를 직접 방문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앞서 독일의 TKMS 조선소도 찾았다.

한국은 K방산의 빠른 납기, 가성비, 신속한 MRO 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캐나다 정부는 늦어도 2028년까지 계약을 마무리하고 2035년 첫 잠수함을 인도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한화오션 측은 2035년까지 4척을 조기 인도하고, 이후 매년 1척씩 납품하겠다고 제안했다. 보통 9년 걸리는 납기를 6년으로 단축해 약 1조원 예산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앵거스 탑시 캐나다 해군 사령관(중장)도 한국을 방문해 한화오션 거제 조선소를 시찰한 뒤 “우리는 잠수함이 빨리 필요하다”며 “잠수함 산업은 지속적인 생산 라인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업계에선 독일 TKMS가 한국보다 납품 일정이 2년여 느린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한국 원팀이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加 사령관 “잠수함 빠른 확보가 우선”

독일은 나토(NATO) 네트워크를 내세운 외교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20일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노르웨이 국방장관과 함께 캐나다를 방문한 게 대표적이다. 앞서 노르웨이도 2030년까지 잠수함 현대화 사업을 하기로 했는데, 지난 2017년 TKMS 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했다. 북대서양과 북극해에서 러시아의 위협에 같은 나토 회원국인 독일과 노르웨이가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2023년 노르웨이는 비슷한 이유로 차세대 전차 사업에서도 현대로템의 K2 대신 독일의 레오파르트 2A7 전차를 택했다.

독일 국방 장관은 “경쟁사(한화 등)가 더 싼 제안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수십 년간 북대서양 협력을 이어갈 신뢰할 동반자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북극 항로의 경제적 가치가 커지면서 러시아·중국 등이 이 주변 항로 개척에 나서자 캐나다도 잠수함 전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