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경북 경주에 위치한 조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최진환 대표가 갓 구워 나온 황남빵을 소개하고 있다. 최 대표는 조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장련성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황남빵 맛있었다’고 하셨다니 뿌듯합니다.”

경주를 대표하는 명물 황남빵을 3대째 86년간 이어오고 있는 최진환 황남빵 대표는 29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며 손님들로 북적이는 매장에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경주 대릉원 인근에 자리 잡은 황남빵 매장에는 APEC 참석차 경주를 찾은 외국인들이 황남빵이 든 봉투 10여 개를 양손 가득 쓸어가고 있었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 정상 및 글로벌 기업 CEO 1700명이 집결한 이번 APEC 기간 동안 황남빵은 ‘경주 대표 디저트’로 인기를 끌었다. APEC 정상회의 주간 공식 협찬사가 된 황남빵이 공식 행사에서 소개된 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CNN 인터뷰에서 “APEC이 열리는 경주에 오시면 십중팔구 이 빵을 드시게 된다”고 소개한 것을 시작으로, ‘경주 APEC CEO 서밋’ 환영 만찬 등 다양한 공식 행사 테이블에 황남빵이 올랐다.

31일엔 시진핑 주석이 이재명 대통령과 인사하던 중 ‘황남빵이 맛있었습니다’라고 말해 이 대통령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날 오후엔 김혜경 여사가 경주 우양미술관에서 주최한 각국 정상 배우자 오찬에도 디저트로 제공됐다. 최 대표는 “이 대통령, 시 주석 기사가 나온 뒤로 전화기에서 불이 났다”며 “APEC 엠블럼을 찍어 특별 제작한 포장지 2만개가 금세 동날 것 같다”고 했다.

황남빵은 경주 특산물로 널리 알려진 ‘경주빵’의 원조에 해당하는 제품이다. 1938년 최 대표의 할아버지 고(故) 최영화씨가 경주 황남동 천마총 앞 자택에서 만들어 팔던 게 시초다. 당시 제과점에서 일하던 고인이 “중국·일본과는 다른 우리 입맛에 맞는 팥만주 간식을 만들어보겠다”며 내놓은 것이다. 부드러운 국산 팥 앙금을 얇은 밀가루피로 감싼 뒤, 빗살무늬를 가운데 새겨 넣었다. 천마총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되며 가게는 지금 위치로 옮겨왔지만, 모두 수제로 직접 빚고 구워 당일 판매하는 시스템은 그대로다.

재료도 대부분 경주 지역에서 조달한다. 2011년부터 경주 지역 농가와 ‘계약 재배’ 방식으로 팥을 대량 구매하고 있다. 지역 농가에서 수확한 팥을 대형 저온 창고에 저장해 두고, 이를 부드러운 앙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했다.

팥 앙금을 밀가루피로 얇게 감싸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구워내는 게 핵심 기술이다.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는 제조 공정은 특허로 지정됐다. 최 대표는 “모양을 닮은 빵은 많지만 수제 공정을 유지하는 건 우리뿐”이라며 “힘이 들 때도 있지만 ‘가업을 만드는 것보다 지켜나가는 게 더 어렵다’고 하던 할아버지 말씀을 새기며 전통을 이어나가려 한다”고 했다. 최 대표는 “이번 APEC을 계기로 세계 각국에서 더 많은 분이 경주와 황남빵을 찾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