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뉴시스

한미 정상이 지난 29일 전격 타결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 대미 투자 펀드 합의에 대해 통상 전문가들은 “일본보다 늦었지만 구체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개선된 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추가된 안전 장치만으로 향후 우리 기업들이 대미 투자에서 수익을 보장받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중심의 투자 구조라는 큰 틀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日에 비해 장기화·구체화

한국은 일본보다 두 달 늦게 협상을 타결했지만 ①연간 투자 한도를 설정해 10년에 걸쳐 투자하도록 하고, ②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되는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는 걸 명시했으며, ③투자 펀드 위원회에서 한국 역할을 강화하고, ④손실 리스크를 줄이는 운용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일본보다 내실 있는 합의’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그래픽=백형선

통상 전문가들은 “양해각서(MOU) 문안이 공개돼야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다”면서도 “일본에 비해 이행 기간이나 내용이 장기화·구체화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10년 분할 투자·연간 한도 200억달러’를 명확히 한 것은 일본에 비해 나은 성과다.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2029년 1월 19일) 55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이행한다’는 큰 틀의 합의를 명시했다. 우리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장기간에 걸쳐 이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사업 진척 정도에 따라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투자하기 때문에 외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이 보장되는 프로젝트에만 투자한다’는 내용을 양국 양해각서 1조에 명시하기로 했다는 점도 강조한다. ‘상업적 합리성’에 대해 김 실장은 “투자 금액을 충분히 환수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보장된 투자”라고 설명했다. 그간 우리 정부는 “돈이 될 만한 프로젝트라면 미국이 자국 돈으로 투자하지 않겠느냐”며 손실 우려가 큰 프로젝트가 선정될 것을 경계해 왔다. 반면 일본은 상업적 합리성 같은 표현이 명시되지 않았다.

◇손실 리스크 줄일 ‘안전장치’

투자금 운용 방식에서도 위험을 줄이는 구조를 채택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일본은 투자 프로젝트마다 별도의 투자회사(SPC)를 만들어 투자금을 관리하는 방식인데, 한국은 모든 프로젝트를 하나로 묶는 통합 투자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 투자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나도 다른 프로젝트에서 수익이 나면 전체적인 손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 대상과 투자 규모를 결정하는 구조도 일본에 비해 일부 보완이 이뤄졌다. 최종 결정권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을 포함한 전원 미국인으로 구성된 투자위원회가 이를 제안·추천한다는 점은 한국과 일본이 유사할 전망이다. 다만, 최종 제안을 법적으로 검토하는 협의위원회 위원장을 한국은 산업통상부 장관이 맡도록 했다. 일본의 경우 협의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명시적 언급이 없다.

수익 분배율은 일본과 같다. 한미가 각각 원리금을 회수할 때까지는 5대5, 회수 이후에는 1대9로 배분한다. 김 실장은 “20년 내 원리금 전액 상환이 회수가 불가능해 보일 경우 분배율도 조정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이 같은 안전장치들에 대해 “마이너한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결정권이 쏠려 있는 근본적인 구조에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구조적으로 일본과 가장 큰 차이는 3500억달러 중 1500억달러를 ‘마스가(MASGA) 펀드’로 확정한 점이다. 일본은 5500억달러 전액이 미국이 최종 결정한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한국은 조선업이라는 특정 산업에 특화된 마스가 펀드를 포함시켰다. 환급 보증, 수출 금융, 보증 프로그램 등을 활용해 새로운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는 구조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내용이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지만 APEC이라는 모멘텀을 놓치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합의가 타결됐다”고 평가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타깃 삼아 일본 등과 산업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우리가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규모 투자 합의가 부담스럽지만 이를 바탕으로 우리 기업이 미국에서 좋은 실적을 거둔다면 장기적 평가는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