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극적인 관세 협상 타결에 성공하면서, 한국 산업계로선 대미 수출 시장에서 최대 악재가 해소됐다는 평가다. 대미 최대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차·부품 관세를 낮췄고, 의약품 추가 관세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다만, 반도체 관세를 일본·유럽연합(EU)과 같은 최대 15%로 확정하지 못한 점과 철강 관세 인하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차·부품 관세, 日처럼 내달 적용될 듯
이번 협상 타결의 가장 큰 성과는 차·부품 관세(25%)가 일본·EU(유럽연합)와 같은 15%로 인하된다는 점이다. 차·부품은 지난해 우리나라 대미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수출 품목이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지난 4월부터 부과된 25% 고율 관세로 인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관세 혜택을 잃었고, 최근 1~2개월 동안엔 미국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EU보다 10%p 높은 관세를 부담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 판매 단가를 인상하지 못했고, 그 여파로 지난 2분기 현대차·기아는 영업이익이 무려 1조6000억원 감소하기도 했다.
다만 차·부품 관세가 언제부터 인하될지 정확한 시점은 불분명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관세 인하가 이달 1일부터 소급 적용되길 기대하고 있다. 반면 통상 전문가들은 일본의 사례처럼 가까운 특정 시일부터 관세가 인하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우리와 유사한 대미 투자 펀드 양해각서(MOU)를 요구받은 일본의 경우 지난달 4일 MOU 체결, 16일자 미 정부 관보 게재라는 인하 루트를 밟았다”며 “지금으로선 한국도 유사한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대미 투자 관련 법안을 빨리 국회에 제출해 가급적 11월 1일부터 관세 인하가 소급적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반도체 관세, 일·EU 비해 아쉬워”
이번 합의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반도체 품목 관세가 확정되지 않은 점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약품과 목재 제품은 최혜국 대우를 보장받고, 항공기 부품과 제네릭(복제약),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 등은 무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면서도 반도체에 대해선 “우리의 주요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고만 했다.
일본은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하면서 반도체에 대해서도 ‘최혜국 대우’를 명시적으로 보장받았다. EU도 ‘추후 부과되는 품목 관세 역시 최대 15%로 한다’는 내용을 보장받았다. 사실상 이 두 국가 모두 반도체 관세는 15%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설명한 한미 합의 내용에선 반도체에 대한 이 같은 최혜국 대우 보장 내용이 없다. 대만의 경우 미국과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이라, 관세율이 어느 정도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AI발 반도체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미국이 대만에 가혹한 반도체 관세를 부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합의를 통해 반도체 관세 불확실성을 명확히 해소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철강 관세 영역에서도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미국은 철강·알루미늄에 현재 관세율 50%를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올 상반기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철강을 활용한 파생 제품에도 철강 함량분에 비례해 관세율 50%를 적용하는데, 이 파생 제품이 약 500개에 달해 국내 중소 제조기업들의 피해가 큰 상황이다.
◇재계 ‘환영’… 상무장관 면담 중 박수 터져 나와
재계에선 이날 협상이 사실상 타결된 것에 대해 환영한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주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선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참석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 등을 마치고 행사장에서 나오던 중 관세 협상 타결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다행”이라고 했다.
일본산 및 유럽산 자동차보다 높은 관세로 미국 시장에서 고전하던 현대차그룹은 “어려운 협상 과정을 거쳐 타결에 이르기까지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신 정부에 감사드린다”며 “현대차·기아는 앞으로도 관세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한 축인 HD현대의 정기선 회장은 “마스가 (프로젝트를) 하기가 더 좋아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