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전남 신안군 임자도 하우리항을 출발한 작업선(CTV)은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1시간 30여분을 쉼 없이 나아갔다. 배가 송이도와 안마도 주변 해역에 들어서자 물 위로 솟은 모노파일(풍력 발전기의 하부 구조) 수십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총 64기 중 33기를 설치했고, 33기 가운데 3기는 상부 구조인 타워와 터빈까지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작업선에 함께 탑승한 정종영 삼해이앤씨 대표이사가 설명했다.

오와 열을 맞춰 길게 늘어선 모노파일들 주변으로 육중한 덩치의 해상풍력 설치선(WTIV)인 ‘한산 1호’가 눈에 들어왔다. 높이 123.6m, 폭 58m, 무게 2만9896톤인 한산 1호는 모노파일과 타워, 터빈 등을 들어 올려 수면 위로 세우는 작업을 맡는다. 이날은 파도가 높아 설치 작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전남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 인근 해역에서 낙월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 삼해이앤씨 제공

◇ 2조3000억원 투입되는 국내 최대 해상풍력 단지

영광 낙월 해상풍력 발전단지는 5.7메가와트(MW) 해상풍력 발전기 64기가 들어서는 364.8MW급 ‘바다 위’ 발전소다. 현재 운영 중인 국내 해상풍력 5곳(전남해상, 제주한림, 제주탐라, 전남영광, 서남해실증)의 용량 총합이 320.6MW인데, 이들을 다 합친 것보다 큰 규모다. 완공 시 국내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가 된다는 의미다. 천안이나 전주 시민이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사업비는 총 2조3000억원이다.

낙월 해상풍력 발전기 건설은 해저에 모노파일을 고정하고, 그 위에 타워를 연결하는 트랜지션피스(TP)를 합친 뒤, 타워와 터빈을 쌓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완성된 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는 해상송전선로(내부망)를 통해 송이도에 있는 변전소로 가고, 여기서 다시 해상송전선로(외부망)를 타고 육지로 넘어가게 된다.

이 프로젝트의 시행사는 낙월블루하트, EPC(설계·조달·시공) 업체는 삼해이앤씨다. 두 회사 모두 명운산업개발의 계열사다. 정종영 대표는 “변전소 건설과 송전망 제작은 거의 다 끝났다”며 “바다 위에 남은 발전기들을 마저 꽂고 송전선로를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올해 10월 기준 공정률은 67% 수준이다. 목표 완공 시점은 내년 6월이다.

28일 전남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 인근 해역에 해상풍력 설치선(WTIV)인 ‘한산 1호’가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 영광=전준범 기자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가 2030년까지 건설하겠다고 한 해상풍력 발전 용량은 14.3기가와트(GW)다. 앞으로 5년 안에 현재 가동 설비(320.6MW)의 40배 이상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지난 2~3년 동안 풍력 경쟁입찰 사업을 통해 약 4GW 규모의 14개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그러나 이 중 실제 착공에 들어간 사업은 낙월 해상풍력이 유일하다.

◇ 설치 선박 단 2대에 배후항만도 부족

여기까지만 보면 공사가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는 듯하나,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녹록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날씨가 짓궂어 대기하는 날이 제법 많았던 데다, 작업하기 적합한 날에도 한산 1호와 같은 설치 전용 선박 부족으로 공정 속도를 원하는 만큼 끌어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설치선(WTIV)인 ‘한산 1호’가 풍력 발전기를 시공하고 있다. / 삼해이앤씨 제공

현재 국내에는 사용 가능한 해상풍력 설치선이 한산 1호와 현대프런티어호 등 총 2대에 불과하다. 이날 바다 위에서 현대프런티어호는 볼 수 없었다. 김욱진 낙월블루하트 전무는 “(현대프런티어호는) 정비를 위해 잠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현대프런티어호가 돌아올 때까진 한산 1호 혼자 작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8월만 해도 낙월블루하트는 “12월 말까지 16기(91.2MW)의 부분 상업운전을 시작하겠다”고 안내했으나, 이날은 “연말까지 8기 상업운전에 돌입할 것”이라며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다.

전용 선박뿐 아니라 해상풍력 전용 배후항만이 없다는 점도 숙제로 꼽힌다. 현재 이 회사는 영광이 아닌 목포 신항만에 장비를 쌓아두고 작업할 때마다 먼 길을 나르고 있다. 해상풍력 유지보수 지원선(SOV)은 국내에 한 대도 없다. 이 같은 인프라 부실은 해상풍력의 발전 단가 상승 요인이다. 한국의 해상풍력 균등화발전비용(LCOE)은 kWh(킬로와트시)당 317원으로 중국(86원)은 물론 덴마크(121원), 영국(155원), 대만(249원) 등과 비교해도 비싼 수준이다.

정 대표는 “그간 국내 해상풍력 사업이 공기업 주도 또는 외국 기업과 협업으로 진행된 것과 달리 낙월 해상풍력은 국내 기업이 시공 전체 과정을 이끈 첫 번째 사례”라며 “정부가 배후항만 조성, 전용 선박 도입 등 인프라 확충을 지원해준다면 국내 해상풍력 보급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