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T의 기술을 적용해 HD현대중공업이 만든 LNG 화물창 내부 모습. 삼성중공업은 기술 유출 우려 등으로 화물창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은 독자 개발한 한국형 LNG 화물창(KC-2C)을 탑재한 7500㎥급 LNG 운반선이 최근 첫 상업 운항을 마쳤다고 27일 밝혔다. 이 배는 이달 인도돼 통영에서 제주 애월 LNG 기지까지 첫 운송을 무사히 마쳤다. LNG 화물창은 천연가스를 영하 163℃의 극저온 액체 상태로 안전하게 저장하고 운송하는 핵심 설비다.

한국은 글로벌 LNG 운반선 시장에서 기술력과 생산성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1위를 지키고 있다. 설계부터 건조까지 모든 공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화물창 기술만큼은 예외였다. 프랑스 업체 ‘가즈트랑스포르 에 테끄니가즈(GTT)’에 매년 수천억 원의 기술 사용료를 내며 의존해 왔다.

우리 조선 업계는 화물창 기술 종속을 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앞서 HD현대중공업이 2023년 케이씨엘엔지테크와 함께 ‘KC-2B’라는 LNG 화물창 기술을 개발한 데 이어 이번에 삼성중공업까지 국산화에 가세하면서, K조선은 화물창 분야에서 기술 자립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됐다.

사진은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 운반선 모습. /삼성중공업

◇조선 업계 아킬레스건이었던 화물창

천연가스는 액화시킬 경우 부피가 600분의 1로 줄어 효율적으로 운송할 수 있지만, 극저온을 유지하지 못하면 기화되며 압력이 급상승해 최악의 경우 폭발 위험까지 발생할 수 있다. LNG 화물창은 그래서 초저온을 유지하면서 기밀성(氣密性)과 단열성을 완벽하게 갖춰야 하는 초고난도 기술의 집약체다.

이 까다로운 기술은 프랑스 GTT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GTT사가 보유한 멤브레인형 화물창 기술은 전 세계 LNG 운반선, 특히 대형 운반선 대부분에 적용된다. 멤브레인형은 선박의 선체 내부를 따라 얇은 스테인리스강이나 니켈-철 합금으로 만든 얇은 벽체를 붙이고 그 뒤에 여러 층의 단열재를 배치하는 방식이다.

우리 조선사들은 LNG선을 건조할 때마다 선가(船價)의 약 5%를 기술 사용료, 즉 로열티로 GTT에 지불해 왔다.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25년 9월까지 30년간 국내 조선 3사(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가 GTT에 지불한 로열티는 총 7조4097억원에 달한다. LNG선 수주 실적이 높아질수록 로열티 지출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는 한국 조선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조선 업계는 화물창 국산화를 시도해 왔다. 2004년에는 한국가스공사와 조선 3사가 KC-1이라 이름 붙인 한국형 화물창 기술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이 화물창은 운항 도중 ‘콜드 스폿(결빙 현상)‘이 계속 발생하며 상용화에 실패했다. 화물창의 한 지점의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콜드 스폿은 선체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화물창 국산화 나서는 조선 업계

삼성중공업이 개발한 KC-2C는 이런 시행착오를 극복하기 위해 새 2차 방벽을 도입하고 시공 방법을 개선해 기밀성과 단열 성능을 확보했다. 영하 163℃의 LNG가 직접 닿는 멤브레인 용접 작업엔 독자 개발한 ‘레이저 고속 용접 로봇‘을 투입해 균일도를 높였다고 한다. 삼성중공업은 KC-2C 화물창이 수익성이 높은 17만4000㎥급 대형 LNG 운반선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기술을 더 고도화할 계획이다.

친환경 에너지 확대 추세에 따라 글로벌 LNG 운반선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영국 드루리(Drewry) 등 해운 분석 기관들은 2030년까지 전 세계 LNG 운반선 수요가 현재보다 150~250척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조선 업계는 기술 자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023년 ‘KC-2B’라는 이름의 국내 LNG 화물창 기술을 LNG 벙커링선인 ‘블루웨일호’에 적용했다. 벙커링선은 중형 선박으로, 해상에서 대형 LNG 선박에 연료를 공급하는 ‘바다 위 주유소’ 역할을 한다. 다만 수익성이 높은 대형 LNG 운반선 시장에서는 프랑스 GTT사의 기술이 여전히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국의 LNG 화물창 기술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LNG 운반선에 적용되고 있다”며 “기술적 난이도 더 높고 안전성 요구가 큰 대형 선박에 국산 기술을 적용하고, 해외 선주사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LNG화물창

배로 LNG를 운반하기 위해 천연가스를 영하 163도로 액화시켜 보관하는 일종의 창고다. 실내 온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폭발할 위험이 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시설이다. 현재 전세계 LNG 운반선의 대부분은 프랑스 GTT사의 화물창 기술에 의존하고 있지만, 최근 국내에서는 기술 국산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