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경영진 시절, 권영수 전 부회장은 보고를 받을 때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맞아요? 맞습니까? 정말 맞아요?’라고 세 번이나 고쳐 묻는 ‘지독한 상사’였다. 그런 그를 임직원들은 ‘깐깐한 권 대리’라고 불렀다. 그 꼼꼼함과 집요함 아래서 그가 이끌었던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사업은 모두 세계 1위로 성장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LG, LG에너지솔루션까지 4개 기업 CEO를 역임한 권영수(68) 전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현 상근고문)이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당신이 잘되길 바랍니다’. 1979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45년간의 직장 생활 가운데 무려 17년을 CEO로 지낸 ‘월급쟁이 신화’ 이면의 비결과 깨달음을 담았다.
지난 24일 전화로 만난 권 고문은 “밖에는 화려한 모습이 주로 보였을지 몰라도, 사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도 억울한 일도 참 많았다”며 “그간 겪었던 어려움과 이를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나누면서 많은 분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쓴 책”이라고 했다.
그는 상사의 지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과장 시절부터 노트를 꼭 들고 다녔다고 한다. 17년간 계열사 CEO로 일할 때도 현장에서 얻은 배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틈틈이 기록해 사내 게시판에 ‘CEO 노트’란 이름으로 공유해 왔다. 그 노트들이 책의 밑바탕이 됐다.
권 고문은 “적는 자가 이긴다는 소위 ‘적자생존’이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라고 했다. 책에는 ‘가장 나쁜 건 NATO(No Action, Talk Only·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것)’ ‘세상엔 정답도 없고, 비밀도 없고, 공짜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처럼 그가 현장에서 겪은 교훈을 담았다.
영국 공장 부지를 찾기 위해 2주가량 기차를 타고 현지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막상 어디로 정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경험, LCD(액정표시장치) 사업 지분 50%를 사기로 한 해외 기업이 MOU(양해각서) 체결식 전날 합의 금액을 대폭 깎겠다고 뒤통수를 쳐 날벼락을 맞았던 기억 등을 전하며 그런 위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들려준다. 권 고문은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참 중요하다”며 “피하지 말고 잘 대응하면 한 단계 성숙하는 배움을 얻게 되고, 다음 기회와도 연결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숱한 난관을 딛고 사업을 세계 1등으로 이끈 비결에 대해, 그는 “경쟁사에서 나와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내가 더 나으면 된다”며 “회사에 구성원 100명이 있을 때 60명이 경쟁사보다 잘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그건 CEO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권 고문은 최근 ‘뉴웨이브원’이라는 투자 컨설팅 회사를 세웠다. 그와 함께 일했던 이방수 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대학 동기인 이영세 전 부장검사와 스타트업 경영 컨설팅에 나선 것이다. 현재까지 바이오,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10곳 남짓한 기업들을 만났다. 권 고문은 “좋은 기술은 사업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필요한 인재나 마케팅 전략, 펀딩 등을 조언하고 연결해주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벤처를 돕는 일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을 소그룹으로 만나 멘토링하는 활동도 해나가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