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건설이 확정된 신규 원전의 부지 선정 절차가 이재명 정부 들어 올스톱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통령이 신규 원전 건설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상황에서, 부지 선정을 위한 공모마저 이뤄지지 않아 전력 수급 계획에 차질이 우려된다. 기존 원전인 고리 2호기 계속 운전 결정도 계속 미뤄지고 있어, ‘탈원전 시즌2’에 대한 우려를 더하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신규 원전 부지를 심의·결정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부지선정위원회는 올 초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따라 1.4GW 규모 대형 원전 2기와 SMR(소형 모듈 원전) 1기의 건설 부지를 정하기 위해 지난 3월 출범했다. 이후 매달 회의가 열렸다. 위원회는 그러나 지난 7월 말 회의를 끝으로 모든 부지 선정 절차를 중단했다. 한수원은 당초 지난 7월 공고를 내고 8월부터 원전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로부터 공모를 받을 계획이었으나, 석 달 넘게 공고조차 못 내고 있다.
◇최소 4개 지자체는 ‘건설 의향’
원전 유치를 희망하는 지자체는 최소 4곳으로 알려졌다. 부지 선정위는 경북 경주·영덕·울진, 울산 울주는 주민 수용성이 충분해 응찰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부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을) 지을 곳도 지으려다 중단한 한 곳 빼고는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 발언과는 상반되는 분위기다. 특히 경주시는 SMR 유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다. 시 관계자는 “SMR 연구 기관인 문무대왕 과학연구소가 연내 준공될 예정이고, SMR 국가 산단 공모 사업에도 선정돼 있어 시너지를 위해 SMR 1호기 유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경북 영덕·울진과 울산 울주는 대형 원전 유치에 대해 주민 의견이 긍정적인 상황이라, 이를 수렴해 원전 유치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울주군 관계자는 “이미 새울 원전이 있는 서생면 원전 유치 자율위원회에서 유치 신청서를 내달라고 군(郡)에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영덕군도 “일자리 확보와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이유로 원전을 유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원전 8기가 들어선 울진군 관계자도 “울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원전 유치 목소리가 있었는데 주민 의견이 수렴될 경우 유치전에 뛰어들 수 있다”고 했다.
원전을 짓겠다는 지역은 여럿인데, 정작 원전 건설은 첫 단추조차 못 끼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금 (원전을 짓기) 시작해도 10년 지나 지을까 말까인데 그게 대책인가”라며 “비현실적”이라고 못 박은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지 선정 과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평가 기준과 원칙은 모두 수립돼 있어 당장 입찰을 받아 부지 평가에 착수해도 되는 상태인데 공모조차 받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선거 국면 되면 동력 잃을 수도
이대로 내년 6월 지방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2038년까지 신규 원전 3기를 지으려는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선거전이 시작되면 현직 지자체장이 혹시라도 당락에 영향을 줄 원전 건설에 선뜻 나서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분야 전문가는 “올해 안에 원전 부지를 정하는 게 목표였는데 계속 공모가 늦어지면 다음 전기본이 나오기 전까지 부지를 못 정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전력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고 인구 소멸 지역의 경제 활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부지 선정이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경북 울진은 최근 한화리조트 백암온천이 문을 닫으면서 관광객이 줄어 지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원전 건설이 결정되면 주민 보조금, 10여 년간 건설 기간 중 근로자 유입으로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하루빨리 부지 선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