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계를 이끄는 글로벌 리더 1700명이 이번 주 경주에 모인다. 미국발 관세전쟁, 인공지능(AI) 패권 경쟁, 공급망 재편 같은 위기와 격변 속에서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이 돌파구를 모색할 무대로 펼쳐지는 것이다.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이후 20년 만에 한국이 마련한 경제 외교의 장(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래픽=김현국

28일 환영 만찬을 시작으로 나흘간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CEO 서밋에는 APEC 회원국 정상급 인사 16명과 글로벌 기업 CEO들이 모여 ‘브리지, 비즈니스, 비욘드(Bridge, Business, Beyond·연결과 성장 그 너머)’를 주제로 세계 경제의 미래 방향을 논의한다. 29일 개막식에선 이번 CEO 서밋 의장을 맡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환영사를 한다. 이어 31일까지 AI·디지털 전환과 투자 등 이슈를 아우르는 총 20개 세션과 특별 대담, 정상 연설이 마련되고 85명의 연사가 무대에 오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9일 CEO 서밋 오찬에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30일 특별 연설에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글로벌 재계 ‘빅샷’(거물)들도 경주에 모인다. IT 분야에선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맷 가먼 AWS CEO, 사이먼 칸 구글 아시아·태평양 부사장, 안토니 쿡·울리히 호만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등이, 경제·금융계에선 제인 프레이저 시티그룹 CEO, 대니얼 핀토 JP모건 부회장,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마티아스 코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이 참석한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 중국 CATL의 쩡위췬 회장, 일본 히타치의 도쿠나가 도시아키 CEO, 미 존슨앤드존슨(J&J) 호아킨 두아토 CEO 등도 방한한다.

그래픽=김현국

◇“어떤 만남이 등장할지 아무도 몰라”

최태원 회장뿐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도 경주로 총출동해 전방위 기업 외교에 나선다. 특히 29일엔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이들 4대 그룹 총수와 정기선 HD현대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등과 만찬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지난주 러트닉의 요청을 국내 주요 기업에 전했다고 한다. 만찬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AI 시대의 핵심 기업 수장인 젠슨 황과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 정의선 회장의 회동 여부도 관심사다. 한 재계 관계자는 “30~31일 회동이 성사될 경우 AI 및 반도체 공급과 관련된 협력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젠슨 황은 CEO 서밋 마지막 날 특별 세션 연사로 나서 AI·로보틱스·자율 주행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구상을 밝힌다.

글로벌 비즈니스계 큰 장이 서면서, 교류와 협력의 기회를 잡기 위한 물밑 조율도 치열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해진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정들이 요동을 치고 있어 총수가 사실상 현장에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회장도 미팅 요청이 쇄도해, 삼성 측이 일정을 조율하느라 연일 회의를 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28일 환영 만찬을 포함해 크고 작은 행사만 30건 가까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을 포함해 12국 정상도 영접해야 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사실상 행사 기간 내내 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야 할 판”이라고 했다. 정의선 회장은 장재훈 부회장, 성 김 사장과 경주에 주로 머물며 주요 인사들과 만나고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LG는 구광모 회장이 계열사 경영진과 글로벌 협력사, 각국 인사들과 교류할 예정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APEC CEO 서밋 개막식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기술력·브랜드 알리기도 치열

이번 행사를 위해 28일 포항 영일만항에 크루즈(유람선)가 띄워져 ‘해상 호텔’로 운영될 예정이다. 7만t급 선박(850개 객실)과 2만6000t급 선박(250개 객실) 등 총 2척으로, 주로 중국과 일본 기업인들이 머무를 예정이다. 경주의 숙박 시설만으로는 부족해 ‘바다 위 호텔’을 띄우는 것이다. 한국에서 국제 행사 숙박을 위해 크루즈를 동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CEO 서밋은 우리 기업들이 기술력과 미래 비전, 브랜드를 전 세계에 알리는 무대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두 번 접는 폴더블폰 ‘트라이폴드’ 실물을 이번에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LG는 자체 AI 모델 ‘엑사원’의 성능과 활용 방안을 발표한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G90 113대, G80 74대, 친환경 수소전기버스 3대 등 차량 192대를 공식 의전 차량으로 지원한다. 롯데호텔서울과 시그니엘부산은 각각 정상회의 오·만찬과 CEO 서밋 환영 만찬을 맡았다. 롯데제이티비는 영일만항 해상호텔을 운영한다. 농심은 ‘케이팝 데몬헌터스(케데헌)’와 협업한 신라면 1만개를 협찬하고, CJ제일제당은 비비고 컵밥과 떡볶이, 김 스낵, 맛밤 등을 APEC 참가자 숙소 등에 공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