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APEC 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이 열리는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 1층 로비가 학계와 업계 등 관계자 600여 명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조재현 기자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수퍼위크’가 27일 퓨처테크 포럼을 시작으로 본격 막을 올렸다. APEC 회원국 16국 정상과 전 세계 1700여 명의 글로벌 재계 리더가 경주로 몰려오는 가운데, 포럼은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과 미래 비전을 세계에 보여주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을 시작으로 30일까지 조선, 방산, 유통, AI(인공지능), 미래 에너지 등 분야 기업들이 차례로 기술력과 향후 미래 비전을 소개한다.

이날 오전 9시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에서 열린 첫 포럼의 주제는 조선이었다. 조선업 대표 주자인 HD현대가 ‘조선업의 미래를 만들다(Shaping the Future of Shipbuilding)’라는 주제로 개최한 포럼엔 국내외 조선업계와 학계 관계자 6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조선 관련 학과가 있는 서울대, 부산대, 동명대 등지의 교수와 학생들도 다수 참석해 미래 조선 기술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APEC에서도 관심 집중된 ‘마스가’

지난 17일 회장으로 취임한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이날 포럼 기조연설자로 나서 ‘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표되는 한미 조선업 협력을 강조했다. 취임 후 첫 공개 행사였다. 정 회장은 “HD현대는 첨단 역량을 통해 미국의 해양 르네상스를 위한 든든한 파트너로 여정에 함께할 준비가 돼있다”며 “미 해군을 필두로 한 차세대 함대 건조와 조선소 재건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전 세계에서 가장 준비가 잘 된 파트너라고 미국 쪽에서도 저희를 인식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히 한미 조선 협력 방안으로 거론되는 미 현지 조선소 인수 방안에 대해 “여러 가지 옵션을 두고 검토하고 있으며, (그것도) 포함돼 있다”고 말해 현지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국, 독일 등 HD현대의 주요 협력 파트너들도 이날 포럼에 연사로 참가해 선박 자율 운항 등을 이용한 조선업 협력 방안을 소개했다. 미 해군에 도입할 차세대 군수 지원함을 공동 개발하기로 한 헌팅턴 잉걸스가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의 에릭 츄닝 부사장은 “우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인 잠수정을 만들고 있고, 유일한 항공모함 공급 업체”라며 “HD현대와 파트너십을 구축해 한미 조선업에서 자율 운항 기술 등에 관한 노하우를 나누고, 영국·호주 등 오커스(AUKUS) 국가와도 핵추진 잠수함 산업의 기반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패트릭 라이언 미국선급협회(ABS)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자동화는 조선업의 핵심”이라며 “스마트 조선소와 자율 운항 기술이 미래 조선업의 대표적인 혁신 기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27일 경주엑스포대공원 문화센터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퓨처 테크 포럼: 조선'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HD현대

‘AI(인공지능)’도 핵심 화두였다. 미국 페르소나AI는 HD현대와 국내 최초로 용접 휴머노이드 개발을 추진 중이다. AI에 기반을 둔 용접 자동화 기술을 제공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을 이용해 이를 실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실증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니콜라스 래드포드 CEO(최고경영자)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숙련 노동자 부족 속에서 휴머노이드는 필수가 될 것”이라며 “10개월간 기초 설계를 거친 이 로봇은 마치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가듯 단계별로 훈련받고 있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지멘스는 선박 설계부터 생산까지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을 HD현대와 공동 개발하고 있다. 조 보만 지멘스 CTO는 “해양 산업에서 AI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토대로 미국과 세계 시장에서 협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존 킴 안두릴 한국 대표도 드론과 미사일 등 무인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방위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두릴은 HD현대와 한미 시장에서 선보일 ‘무인 수상정’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K방산에도 높은 관심

같은 날 오후에는 방산 관련 포럼도 이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오션 등 방산 3사는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모두를 위한 지속 가능한 평화’(Sustainable Peace for All)를 주제로 ‘한화 퓨처 테크 포럼: 방산’을 개최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포럼에는 국내외 군 관계자와 방산 기업 CEO 등 27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27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화 퓨처 테크 포럼: 방산'에서 크리스토퍼 파인 전 호주 국방장관이 ‘전략적 경쟁시대 호주 방위산업 정책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한화

이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손재일 대표는 “한화의 기술은 도발이 아닌 보호를 위한 기술이며,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평화를 위한 기술’(Technology for Peace)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KAI, LIG, 대한항공, HJ중공업, 풍산 등 국내 주요 방산 기업도 참가했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호주 등 주요 지역의 안보 환경 변화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파인 전 호주 국방장관은 “기술 혁신과 국방 산업이 협력을 확대해야 국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다”고 했고, 랠프 우디스 NATO 신속대응군 사령관은 전쟁 양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적 대비와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