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1945년 고(故) 조중훈 창업주가 ‘수송보국’을 기치로 내걸고 시작한 이래, 1969년 대한항공을 인수하며 종합 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트럭 한 대로 시작한 회사는 연 매출 31조원, 전 세계 4만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글로벌 물류 그룹으로 성장했다.
한진그룹은 그러나 핵심 계열사였던 한진해운이 2016년 파산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를 겪었다. 창업자 2세대인 조양호 전 회장이 2019년 별세한 이후 조원태 회장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분 상속·경영권 승계 이슈가 불거지며 가족 간 내부 갈등으로 내홍을 겪기도 했다. 조원태 회장 취임 직후인 2020년에는 사모펀드 KCGI를 중심으로 호반건설 등이 참여한 ‘3자 연합’이 그룹 지분을 확보하며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런 내우외환 속에서도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 세계 항공업계의 전례 없는 위기에서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하는 기민한 전략을 통해 흔들림 없는 흑자 경영을 달성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창립 80주년 행사를 연 한진그룹은 인공지능(AI) 기반 ‘초자율화 물류 시스템’과 ‘우주 물류’를 핵심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각 계열사가 공유하는 한진그룹의 유산을 바탕으로 100년,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세계 최고의 종합 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했다.
◇“육·해·공 넘어 우주까지”... 미래 7대 전략 공개
이날 한진그룹은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45년을 목표로 한 ‘그룹 VISION 2045’를 발표하고, 기존의 항공·물류 영역을 뛰어넘는 7가지 미래 전략을 공개했다. 가장 눈길을 끈 전략은 AI 기반 초자율화 물류 기술 혁신이다. 사람이 트럭을 몰고 화물을 실어 나르는 대신 AI가 최적의 경로를 계산하고 자동화 시스템이 물류 전 과정을 관리해 수송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한진그룹은 이런 기술 혁신을 선도해 물류 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한진그룹은 육·해·공을 넘어 우주까지 진출한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방위산업과 우주 발사체 제작 분야에서 축적된 기술력을 활용한 지속 가능한 우주 물류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우주 관광 등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적 투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조현민 사장은 “오래된 인공위성을 우주에서 수거하는 임무 등이 우주 물류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낡은 인공위성 수거는 우주 쓰레기로 인한 충돌 위험을 제거해 안전한 우주 교통을 확보하는 핵심 기술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새로운 CI(기업 이미지)도 공개됐다. 기존 ‘H’ 마크를 단선으로 재해석해 미래 지향적으로 표현했으며, 부드러운 상승 곡선으로 역동성을, 개방된 원형 디자인으로 글로벌 시장을 향한 열린 태도를 담았다.
◇포화상태 항공업 등도 난관
2019년 조원태 회장 체제로 전환한 한진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완료하고 2027년 통합 항공사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통합 항공사는 유상 여객 운송 거리 기준 세계 10위권에 올라 글로벌 영향력을 대폭 확장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난관도 적지 않다. 국내의 경우 LCC가 난립하며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환율이 치솟으면서 원가 부담도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 등으로 관광, 물류 수요를 쉽게 예측하기도 어렵다. 아시아나 합병을 잡음없이 마치는 것도 과제인데, 두 회사의 ‘화학적 결합’이 원활하게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