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거래소의 1조원 규모 ESS(에너지 저장 장치) 중앙계약시장 2차 입찰이 다가오면서 국내 배터리 3사의 수주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앞서 진행된 1차 입찰에서는 삼성SDI가 전체 물량의 약 76%를 확보하며 성과를 올렸으나, 그 사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역시 전략을 가다듬고 권토중래(捲土重來)에 나섰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주춤하면서 생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ESS를 ‘선택’이 아닌 ‘생존의 필수’로 삼으면서 시장 주도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LG에너지솔루션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서 직원이 배터리 생산 공정을 살펴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월 이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대규모 양산을 시작했다. 주요 배터리 기업 가운데 미국 현지에서 ESS용 배터리 양산을 하는 것은 LG엔솔이 처음이다. /LG에너지솔루션

◇‘1차 승자’ 삼성과 반격 나선 LG, SK

ESS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불규칙한 전력 생산의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에서 필수 설비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과거 2017~2019년 잇따른 화재 사고로 산업 성장이 주춤했고, 그 사이 중국산 ESS 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했다.

최근 북미·유럽 등에서 ESS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며, 시장조사 기관들은 2028년까지 전력망을 중심으로 ESS 시장이 연평균 2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북미에서 급격히 늘고 있는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는 발전소 및 송배전망 인프라와 함께 ESS 수요 증가를 이끌고 있다.

배터리 3사는 각기 다른 전략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에서 ESS 사업으로 가장 먼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업체 중 최초로 지난 6월 미국(미시간 공장)에서 ESS용 LFP 배터리 대규모 양산을 시작했다. 지난 14일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도 작년보다 34% 늘어난 601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보조금 효과를 제외해도 2358억원의 이익을 냈다. 업계 관계자는 “선제적인 생산 거점 확보가 경쟁사 대비 강점”이라고 말했다.

삼성SDI는 국내시장 우위를 굳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전기안전공사와 ‘ESS 안전 생태계 구축’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안전성 검증 체계 강화, 표준화된 관리 시스템 구축 등 ESS 산업 전반의 안전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협력을 추진한다. 안전까지 강조하며 국내시장 우위를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SK온은 국내에서 LFP 배터리 생산을 추진하며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이다. 서산 공장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라인 일부를 ESS용 LFP 배터리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20일 연세대에서 진행한 특강에서 “ESS는 전기차를 잇는 미래 핵심 성장 축”이라며 “ESS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확장하겠다”고 ESS를 통한 성장 의지를 강조했다.

◇1조원 규모 2차 입찰, 국내 생산 비중이 변수

배터리 3사의 경쟁은 연말로 예정된 1조원 규모의 한국전력거래소 2차 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에서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육지 500MW(메가와트), 제주 40MW 등 총 540MW 규모로, 충·방전 6시간이 가능한 ESS 설비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비슷한 규모였던 1차 사업에서는 삼성SDI가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로 약 76%를, LG엔솔이 LFP 배터리로 24%를 수주했다. 2차 계약은 이르면 이달 중 공고돼 연말쯤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2차 입찰은 ‘국내 생산’ 관련 평가 항목이 경쟁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LG엔솔은 입찰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중국 난징 공장의 LFP 생산 라인을 국내로 이전하거나 충북 오창 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SK온도 서산 공장 라인 일부를 ESS용 LFP 배터리 생산으로 바꿔 국내 ESS 시장 진입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