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추진하는 전력망 건설 사업의 절반 이상이 지연 상태이거나 지연이 예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정부가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적극 늘리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태양광·풍력 발전소만 늘고 계통 연계는 늦춰지면 전력 수급 불균형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한전이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포함된 54건의 송·변전 설비 건설 사업 가운데 절반 이상인 30건(55%)이 건설 지연 중이거나 지연 예상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송전선로 건설은 29건 중 지연 4건, 지연 예상이 10건 등으로 48%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변전소·변환소 건설은 25건 중 지연 14건, 지연 예상 2건으로 조사됐다. 전체 사업의 64%가 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한전은 전력망 건설 지연의 주된 사유로 주민 수용성 부족과 보상 지연,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 절차 장기화, 재생에너지 연계 사업 승인 지연, 부지 확보 난항 등을 언급했다.
‘동해안~수도권’ 구간 송전선로 건설 사업이 대표적인 지연 사례로 꼽힌다. 이 사업은 동해안 석탄화력과 원자력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7000억원을 들여 추진됐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하남시가 선로의 종착점인 동서울변전소 증설과 관련해 도시 미관과 소음 문제, 주민 수용성 등을 이유로 인허가 4건을 불허했고, 공사는 결국 중단됐다.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한전 손을 들어줬는데도 하남시가 불복하며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 건설 사업의 당초 준공 목표 시점은 2019년 12월이었다. 현재 한전은 2027년 12월로 준공 시점을 늦춘 상태다. 사업 기간은 최소 8년가량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또 새만금·신안 해상풍력 연계선도 정부의 2030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 시점보다 늦은 2031~2033년쯤 준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용인·평택·하남 등 수도권과 산업단지 전력 공급망 건설 프로젝트도 변전소 공사 지연으로 3기 신도시와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의 차질이 우려된다.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만 늘고 전력 계통망은 제때 깔리지 않으면, 전력 수급 불균형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전기의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지 않으면 심할 경우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박정 의원은 “재생에너지 확대의 핵심은 전력 계통의 안정성과 공공성”이라며 “정부와 한전은 송전망 사업을 국가전략사업으로 격상해 인허가 단축, 공공 참여 확대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