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결혼기념일이라 기분을 내고 싶은데 어떤 와인이 좋을까? 가격은 5만원대로, 와인을 거의 마셔본 적이 없는 초심자도 즐길 수 있는 걸로 추천해줘.”
16일 롯데마트 주류 전문 매장 ‘보틀벙커’ 앱을 열어 검색창에 이런 주문을 입력하자 ‘AI(인공지능) 소믈리에’가 곧장 답변을 했다. “결혼기념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5만원대는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와인이 많습니다. 특별한 날인 만큼 섬세한 풍미와 아름다운 기포가 매력적인 스파클링 와인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AI 소믈리에가 추천한 와인은 5종이었다. 그중 하나를 선택했더니 제품 수령을 원하는 매장과 일정까지 바로 지정할 수 있었다.
쇼핑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검색창에 상품명을 입력하고 수많은 목록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시대가 저물고, 마치 개인 쇼핑 비서에게 묻듯이 AI와 대화하며 쇼핑하는 ‘대화형 커머스’가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월마트, 아마존 같은 글로벌 유통 공룡은 물론 국내 기업들도 앞다퉈 AI 기반 대화형 커머스를 도입 중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생성형 AI의 발전으로 대화형 커머스의 기술적 장벽이 허물어졌다”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의 설득에 충동구매하는 시대가 열린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월마트도, 아마존도 대화형 커머스에 힘 줘
세계 최대 소매업체인 미국 월마트는 지난 14일(현지 시각)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챗GPT와의 대화를 통해 월마트의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추천받고, 결제까지 바로 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회장은 “오랜 기간 이커머스 쇼핑은 검색창과 긴 상품 목록으로 이뤄졌다”며 “이제 AI와 함께 쇼핑의 판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형 커머스는 생성형 AI 기업과 유통 기업을 가리지 않고 확산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 기업 아마존은 지난해 앱에 소비자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는 챗봇 ‘루퍼스’를 탑재했다. 지난 4월에는 아마존에 입점하지 않은 제품까지 추천해주는 쇼핑 AI 에이전트 ‘바이 포 미’ 시험판을 공개하기도 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랄프 로렌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애스크 랄프(Ask Ralph)’라는 대화형 쇼핑 기능을 내놨다. ‘콘서트에 갈 예정인데 어떤 스타일이 좋을까?’ ‘남성용 네이비 재킷은 어떻게 코디하면 좋을까?’ 같은 질문을 하면 소비자의 취향과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코디를 추천해주고, 전신 스타일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대화형 커머스로 소비자 지갑 열어
기업들이 앞다퉈 대화형 커머스에 투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비자 경험을 혁신해 경쟁업체로 이탈을 막고,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형 AI가 개인화된 쇼핑 경험을 제공하며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화형 커머스를 빨리 도입하지 않으면 다른 채널이나 업체에 소비자를 빼앗길 수 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6월 자사몰 ‘CJ더마켓’에 생성형 AI 기반 대화형 검색 서비스 ‘파이(Fai)’를 도입했다. ‘고단백이면서 저칼로리인 간편식이 없을까’ ‘오늘 저녁 뭐 먹지’ 같은 질문에 적합한 제품을 제시해준다. 서비스 시작 4개월 만에 CJ더마켓 이용자 5명 중 1명이 이 서비스를 사용했고, AI가 추천한 상품을 실제로 구매한 비율은 28.5%였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운영 초기 단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긍정적인 수치”라고 말했다.
롯데마트의 AI 소믈리에도 성과를 내고 있다. 구글의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구축된 이 서비스는 시작 4개월 만에 픽업 예약 이용 건수가 AI 도입 전 같은 기간 대비 40%, 이용자 수는 35% 증가했다. 대화형 커머스가 정보 제공을 넘어,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핵심적인 마케팅 도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