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판결을 파기환송 하면서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심 판결의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4000억원가량의 재산을 현금으로 분할해야 한다’는 판단이 대법원에서 뒤집히면서 SK그룹 측은 일단 ‘최악은 피했다’며 안도하고 있다.

2심 판결의 재산 분할액이 그대로 인정됐을 경우, 최 회장은 이를 마련하기 위해 그룹 지배 구조의 핵심인 SK㈜ 지분 또는 알짜 비상장 계열사 SK실트론 매각이 유력했는데, 당장 이러한 리스크는 피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노소영 관장이 대규모로 재산 분할을 받으면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대법 판결로 이럴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 결과 SK그룹 지주사인 SK㈜ 주가는 판결 직후 약 7% 급락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2심에서 금액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SK그룹 내부적으로 지분 매각 등 유동성 확보 방안까지 검토해야 했던 상황”이라며 “이번 파기환송은 불행 중 다행, 최 회장 측에선 최선의 시나리오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서울 종로구 SK사옥 앞.

앞서 2022년 12월 1심 선고에선 노 관장 측에 665억원 재산 분할이 인정돼 사실상 최 회장에게 유리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작년 5월 서울고법 2심 재판에선 재산 분할액이 20배 이상으로 불어난 1조3808억원으로 결정돼 재계 전반에 충격을 줬다.

특히 ‘혼인 중 형성된 주식 가치’ 그리고 노 관장 측이 주장한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으로 유입돼 사업에 활용됐는지 등이 쟁점이 됐다. 노 관장 측은 2심 재판에서 ‘부친인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SK 측에 300억원을 지원했고, 이 금액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취지로 현금 2조원 재산 분할을 청구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비자금 300억원이 SK에 지원됐다고 하더라도, 이는 노태우 대통령이 재직 중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며 “불법성이 있는 뇌물이 법적 보호 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 분할에서 피고(노소영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 취지로 파기환송심이 진행될 경우, 재산분할액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파기환송심 기간 동안 최 회장 측은 자산 구조를 재정비하고, 혹시 모를 추가 부담에 대비한 자금 운용 계획을 다시 짤 여유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SK실트론의 경우, 이번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으로 ‘급매’로 내놓을 필요가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법적 리스크가 줄어들면서 SK그룹이 SK실트론 매각에서 시장 가치를 조금 더 인정받을 시간을 벌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소송 자체가 장기전으로 접어들면서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