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오가는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규제하기 위한 환경 규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미국은 자국 해운·조선 산업에 부담을 주는 부당한 규제라며 찬성표를 던진 나라에도 보복을 예고했다. 반면 압도적인 신조(新造·새로 만듦) 능력을 갖춘 중국은 규제가 강화되면 친환경 선박 수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적극 지지하고 있다.

16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국제해사기구(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는 14일부터 17일까지 런던 본부에서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Marine Environment Protection Committee) 제2차 임시회의를 열고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넷제로 프레임워크(Net-Zero Framework)’ 채택을 논의한다.

영국 런던에 있는 국제해사기구(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전경./해양수산부 제공

넷제로 프레임워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 세계 해운 산업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량 ‘0’(Net-Zero)을 목표로 이행하는 여러 조치를 의미한다. 선박 운항에 쓰이는 연료 종류와 비용 구조를 바꿔 탄소를 줄이는 것이다. ▲글로벌 선박 연료 기준 ▲온실가스 배출 가격제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각국 합의를 도출한다.

이번 회의에선 넷제로 프레임워크의 핵심 조치인 ‘MARPOL 부속서 VI 개정안’ 채택 여부가 중요하다. 전 세계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감축에 구체적인 비용을 매기고, 법적 구속력을 인정하는 국제 규범에 해당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선박들은 매년 연료의 탄소 집약도에 따라 평가받는다. 기준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IMO 넷제로 기금에 부담금을 내거나 감축 잉여량을 구매해야 한다. 감축 실적이 우수한 선박은 배출권을 팔거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탄소 중립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에는 보상이 주어진다. 이번 회의에서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 의무화를 담은 개정안이 채택되면 2027년 3월부터 발효될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번 회의를 앞두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넷제로 프레임워크 IMO 협상에서 탈퇴하며 강하게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연료 기준 강화, 탄소 부담금 부과 등으로 해운업계 부담이 커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마르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국민, 에너지 기업, 해운업계, 관광객에게 추가 비용을 전가하는 조치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해당 안건에 찬성표를 던질 국가에는 항만 이용 제한, 비자 제재, 상업적 불이익, 항만 추가 요금, 금융 제재 등 보복 조처를 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반면 중국은 이번 온실가스 감축안 표결에 찬성한다. 중국은 전 세계 신조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연료 규제 강화로 친환경 선박 수주가 늘면 수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 세계 누적 수주 물량 중 56%를 중국이 가져갔다.

IMO 회원국은 총 176개국으로 이번 넷제로 프레임워크 채택 여부에 투표권을 가진 나라는 ‘MARPOL 부속서 VI’의 당사국 108개국이다. 108개국 중 기권한 나라를 제외하고 3분의 2 이상 찬성표가 나와야 의결된다. IMO는 회원국 의견을 수렴해 18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 IMO 대표단은 해양수산부가 맡고 있다. 대외적으로 의견을 밝히고 있지 않으나 업계에서는 해수부가 넷제로 프레임워크 채택에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번 규제는 비용이 늘어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로 미·중 간 해양 패권 전쟁 성격도 있다”며 “전 세계 조선·해운 산업이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