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ESG친환경대전’ 한 부스에 길이 6m, 폭 2m 크기 검은색 배가 전시됐다. 장난감이나 쓰레기통을 만드는 데 쓰이는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으로 만든 배<사진>였다. 부스에 내걸린 ‘오늘의 바다쓰레기, 내일의 배가 됩니다’라는 문구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만들 수 있다는 의미였다. “플라스틱으로 어떻게 배를 만들어요?”라며 신기해하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 배는 롯데케미칼의 1호 사내벤처 에코마린이 개발한 소재로 만든 것이다. 2023년 독립법인으로 분사한 에코마린은 해양 분야의 신소재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선박의 주 소재인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와 알루미늄의 한계에 주목했다. 현재 국내 어선의 약 97%는 FRP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 수지와 섬유가 결합돼 튼튼하지만, 폐기 때 분진이 발생하고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해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알루미늄은 재료 생산 과정에서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에코마린이 찾은 해답이 HDPE였다. 샴푸와 세제 용기 등 일상용품에 흔히 사용되는 HDPE는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 탄소 발생량도 알루미늄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도료(페인트)를 바르지 않아도 선박 외관 유지가 가능해, 도료가 벗겨지면서 생기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에코마린은 이미 구조정, 고속정, 어선 등 선박 16척을 HDPE로 제작했고, 평택항과 해양청 등에서 실제 운용되며 성능을 입증하고 있다.
HDPE 선박은 건조 단가가 FRP보다 15% 정도 비싸다는 게 흠이다. 에코마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에 첫 자체 공장을 짓고 있다. 창업 멤버인 맹광희 이사는 “고품질의 대형 제품을 직접 생산해 용접 공정과 인건비를 줄이면 건조 단가를 FRP 수준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마린은 2023년 2억6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지난해 11억9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8년 매출 200억원을 목표로 해외 진출도 시작했다. 최근 말레이시아 방산 업체와 업무 협약을 체결하며 현지에서 HDPE 선박을 제작하기 위한 공동 프로젝트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