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 9일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추가 발표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중국을 맹비난하며 추가 보복 관세 100%를 예고했다. 하지만 그는 단 이틀 만에 태도를 바꿨다. 이 장면이야말로 희토류가 미국의 아킬레스건임을 보여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 세계 희토류 매장량과 생산량에서 중국이 압도적 지위를 가진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희토류 무기화 가능성도 경고했다. 하지만 미국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탓에 첨단 무기와 전기차, 반도체 생산 등 핵심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방안이 거의 없는 상태다.

◇첨단 산업·안보 인질 잡힌 美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24년 미국의 희토류 생산량은 약 4만5000t으로 세계에서 둘째로 많지만, 중국(27만t)에 크게 뒤처진다. 이마저 대부분을 중국에 보내 가공한다. 정제·가공 시설 부족 때문이다.

실제 2019~2020년 미국이 소비한 희토류 화합물·금속은 100% 외국산으로 충당됐고, 미국이 수입한 희토류 중 중국산은 약 70%에 이른다. 중국이 별도 허가를 받도록 규제하는 사마륨·디스프로슘·가돌리늄·테르븀·이트륨 등 중(重)희토류 원소 7종의 경우 80~90% 이상이 중국에서 온다.

희토류 규제는 첨단 산업과 안보를 겨냥한다. 미 국방부는 올 4월 F-35 전투기와 최신예 이지스함 알레이버크급 구축함(DDG-51)에 각각 희토류 400㎏과 2400㎏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항공용 엔진이나 전기 모터에는 전기차보다 강한 자력(磁力)을 내면서도 고열도 견딜 수 있는 ‘사마륨’ 등으로 만든 자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레이더 시스템이나 유도 미사일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간 미국은 중국에서 사마륨 등을 수입한 뒤 자국이나 우방국에서 군사용 희토류 자석을 만들어 조달했다. 하지만 중국이 군사 목적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이런 방식도 통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으로선 안보와 핵심 산업 역량이 중국 희토류의 ‘인질’로 잡힌 셈이다.

미국은 2018~2019년 중국과 1차 무역 전쟁 이후 국방부를 중심으로 희토류 공급망 구축 노력에 착수했지만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현재 미국이 가동 중인 유일한 희토류 광산은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 광산이다. 환경 문제로 2002년 폐쇄됐다가 2018년 재가동됐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 정부는 지난 7월 마운틴패스 운영사의 지분 15%를 인수하고, 생산한 희토류를 시세의 2배에 사들이기로 약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광산이 현재 목표하는 희토류 영구 자석 생산량은 연간 1000t에 그쳐, 중국 생산량의 1%에 못 미친다.

◇中, 희토류 채굴 산업 장악

희토류는 사실 전 세계에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중국 매장 비율이 약 49%로 가장 많지만, 희토류를 아예 구하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여러 원소가 뒤섞인 상태의 희토류를 분리·정제해 순도 높은 제품으로 만드는 가공 공정이다. 이 과정에는 각종 독성 화학물질, 중금속, 방사성물질 등이 필연적으로 따라붙는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희토류 채굴·생산을 중국에 맡겨온 이유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희토류를 ‘중국의 석유’로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했고, 지금은 희토류 및 주요 광물의 세계 공급망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원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엔 희토류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만 30곳이 넘지만 미국·유럽 등엔 사실상 전무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때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에 당한 일본은 희토류 탈중국을 위해 국가적 총력전을 펼쳤다. 희토류 사용을 줄일 신기술과 대체 물질을 개발하고, 폐전자제품 등에서 희토류를 회수하는 재활용 기술 개발에도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호주 등 해외 희토류 광산에 대한 지분 투자와 희토류 비축도 병행했다. 이런 노력 끝에 일본은 2010년 당시 90%가 넘었던 중국 의존도를 최근 60% 수준까지 낮췄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 부연구위원은 “중국에 대응하려면 일본과 같이 장기에 걸친 공급망 다양화와 희토류 수요 감축 및 재활용 확대 기술 개발 등 종합적 대책이 필요한데, 미국은 실기(失機)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희토류

원자번호 57번 란타넘(La)에서 71번 루테튬(Lu)까지 란타넘족 원소 15종에 스칸듐(Sc), 이트륨(Y)을 포함한 원소 17종을 뜻한다. 전기차 모터, 2차 전지, 반도체, 풍력발전 터빈, 미사일 시스템 등에 두루 쓰여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 불린다. 전 세계 정제 희토류 생산량에서 중국의 비율은 91%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