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있는 모습. /뉴스1

한국 철강의 최대 수출 시장인 유럽연합(EU)이 수입 철강에 대한 무관세 물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미국과 같은 50%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식화했다. 미국과 EU의 고율 관세 파고에 우리 철강 업계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EU 집행위원회는 7일(현지 시각) ‘유럽 철강 업계 보호 대책’ 초안을 발표하고, 철강 무관세 쿼터 총량을 작년보다 47% 줄인 1830만t으로 축소한다고 밝혔다.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선 기존 25%에서 50%로 높아진 관세가 적용된다. 국가별 쿼터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무관세 총량이 반 토막 나는 만큼 한국 등 주요 수출국의 쿼터도 대폭 삭감될 전망이다. 한국은 지난해 EU에 철강을 총 393만t 수출하며, 튀르키예(1위)에 이어 둘째로 많은 수출 물량을 기록했다. 이번 초안은 내년 6월 말 종료 예정인 현행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의 연장·개편 성격으로, 회원국 투표를 거쳐 적용될 전망이다.

EU가 새 관세 조치를 내놓자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산업통상부는 8일 “EU가 국가별 쿼터 물량을 배분할 때 FTA 체결국 지위를 고려하겠다고 밝힌 만큼, 양자 협의를 통해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조만간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 담당 집행위원을 만나 우리 측 입장과 우려를 전할 예정이다. 산업부는 10일 민관 합동 대책 회의를 열어 ‘철강 산업 고도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국내 철강 업계로선 EU가 내년부터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또 하나의 악재다. CBAM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탄소 다배출 품목에 대해 EU 역내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일종의 ‘탄소 관세’다. 내년 1월부터 이 제품들을 EU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 정보를 현지 수입 업자에게 제공하고, 수입 업자는 이를 바탕으로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그만큼 우리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 특히 EU는 CBAM 적용 대상을 세탁기, 자동차 부품, 산업용 기계 등 범용 공산품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국 철강 업계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CBAM은 새로운 형태의 관세”라며 “철강 관련 수출 산업 대부분이 탄소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