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련소를 둘러보는 최창걸 명예회장/고려아연

비철금속 제련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대한민국 고려아연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최창걸 명예회장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다.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 회장의 6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74년 고려아연을 창립한 이래 비철 제련업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시작했다.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를 불과 30여 년 만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 세계 제련소들을 추월하는 세계 1위의 종합 비철 회사로 이끌었다.

최 명예회장은 혁신이나 개혁보다는 꾸준함과 성실함에 기반한 경영 철학을 강조했다. 기본에 충실한 ‘정도 경영(正道經營)’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신의 한 수’ 된 건설 방식

1974년 회사를 설립할 당시, 사업 자금 확보가 큰 문제였다. 국내에서는 국민투자기금과 산업은행 등에서 자금을 빌렸고, IFC(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를 통해 해외 자금 조달에도 나섰다. IFC는 당시 예상 사업 자금을 7000만달러로 추산했으나, 최 명예회장은 5000만달러로 가능하다고 설득했다. 부채와 자기자본 비율도 6:4에서 7:3으로 협상했다. IFC에서 1300만달러를 빌려주고, 400만달러를 자본금으로 투자했는데 당시 IFC가 투자한 민간 기업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비용 절감을 위해 턴키 방식(수주 업체가 완성된 시설을 넘겨주는 방식) 대신 직접 구매 및 건설 방식을 택했다. 수십 개의 단종 면허 토목 공사업체와 건건이 계약한 결과 4500만달러로 공사를 완성했다. 초기 목표 금액보다 500만달러를 절감한 것이다. 이 방식은 비용 절감뿐 아니라 노하우와 기술까지 익히게 되는 ‘신의 한 수’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사업 기반 확대

최 명예회장은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 및 부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고려아연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생산 시설 확장에 힘썼다. 아연, 납(연), 구리(동)를 한곳에서 함께 만드는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특히 납을 만드는 공정에서는 DRS 공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연제련 공장을 만들었고, 아연괴를 런던 금속 거래소(LME)에 등록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했다. 회장 취임 이후에는 아연·연 공장을 증설하고 호주에 SMC 아연제련소를 설립하며 글로벌 사업 기반을 확대했다.

1974년 8월 1일 고려아연 창립 기념식에서 최기호 창업자(앞줄 오른쪽에서 4번째)와 최창걸 명예회장(왼쪽에서 3번째). /고려아연

◇친환경 경영 실현

최 명예회장은 제련 산업을 친환경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연 잔재를 친환경적인 청정 슬래그 형태로 만들어 시멘트 원료로 판매하는 아연 잔재 재처리 기술을 상용화해 전 세계 제련소의 공통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환경친화 기술 등 첨단 신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자원 리사이클링 전담 부서를 신설해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산업용 자동차용 폐배터리, 폐PCB, 아연재 등을 적극적으로 수거해 원료로 사용했다. 유가 금속을 다시 회수해 폐기물의 무분별한 처리도 막았다. 고려아연이 연간 100만톤이 넘는 각종 광석과 재생 물질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회수하는 금, 은, 인듐, 안티모니 등 희소 금속들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했다.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 결과 고려아연은 창업 초기와 비교하여 아연 생산 능력이 연 5만톤에서 65만톤으로, 매출액은 114억원에서 12조원 수준까지 성장했다.

◇’물고기 잡는 법’

최 명예회장은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인재를 중시하며 노사 화합을 실천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38년 무분규와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IMF 등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구조조정이나 명예퇴직을 실시하지 않았다.

또, 초대회장인 부친 고(故) 최기호 회장의 “손에 쥔 재산은 언제든 잃을 수 있지만 머리에 든 재산은 절대 잃지 않는 법”이라는 배움의 중요성을 이어받아 ‘물고기를 잡아주는 일’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나눔을 실천했다고 한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아동 복지 분야에 기여했고 이후에도 많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자, 부인과 아들까지 가입하며 ‘패밀리 아너’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