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외국산 수입 철강에 대한 관세를 미국과 같은 수준인 50%로 올릴 예정이다. 유럽은 국가별 일정 쿼터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이를 넘는 양에 대해서만 25% 관세를 매겨왔지만 이 쿼터도 절반으로 축소하고 관세를 2배로 올리는 방안도 추진한다. 철강 보호무역주의가 도미노처럼 EU 등 다른 지역에 확산되는 모양새다.
EU는 미국과 더불어 우리 기업들의 최대 철강 수출 시장이다. 내수 침체와 중국산 저가 철강의 공습으로 이미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양대 시장에서 고율 관세를 받게 되면 우리 철강 기업들의 수익성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EU, 우리 철강 최대 수출 시장
1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 현지 언론들은 EU 집행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철강 정책 패키지’를 7일 발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EU는 지난 2018년 7월부터 무관세를 적용하는 철강 수입량(쿼터)을 정해두고, 이를 넘어선 물량엔 25% 관세를 매기고 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가 EU 27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철강의 쿼터는 258만t이다. 또 후판·STS 열연·선재 등 일부 철강 세부 품목은 유럽에 먼저 수출되는 일정량만 선착순으로 무관세를 인정하는 ‘글로벌 쿼터’를 적용한다. 우리 기업들은 이런 제도를 활용해 무관세 혜택을 상당 부분 누려왔다. 지난해에만 철강 제품을 44억8000만달러(약 6조2800억원)어치 수출했다. 하지만 EU가 이 쿼터를 대폭 줄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쿼터가 대폭 줄어들 경우 우리 기업들 입장에선 커다란 악재를 만나게 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우리는 이미 EU 무관세 쿼터를 사실상 꽉 채워 수출하고 있다”며 “EU가 국가·글로벌 쿼터를 줄이고 관세는 50%로 올릴 경우 우리 기업들의 수출량은 급감할 것”이라고 했다.
EU의 이번 조치는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는 자국 내 철강 기업들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유럽도 중국 등 외국산 저가 철강 제품의 과잉 공급 문제를 겪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정부가 철강 관세 50%로 유럽 철강 제품에 대해 문턱을 높이자, 여기에 대항해 무역 장벽을 높이는 것이란 분석이다.
EU는 지난 2018년에도 당시 트럼프 1기 정부가 “외국산 철강이 국가 안보를 해친다”며 철강 관세를 25%로 올리자, 쿼터제 도입과 관세 인상으로 맞섰다. 다만 일각에선 EU 회원국 사이 이견으로 실제 50% 관세 도입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관세가 올라도 결국 한국 기업에 적용되는 무관세 쿼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미 이어 유럽, 韓 기업 삼중고
EU까지 철강 관세를 올리며 우리 기업들은 삼중고를 넘어 사중고에 처할 지경이다. 미국발 충격에 한국 건설 경기 침체, 중국 저가 철강과의 글로벌 경쟁에 유럽에서까지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3월부터 무관세 쿼터제를 폐지하고 철강에 관세 25%를 적용한 데 이어, 6월에는 관세를 50%로 인상했다. 충격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올 1~8월 우리 철강 수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5.8% 감소했다. 관세가 50%로 오른 뒤에는 수출 자체를 포기하는 기업이 늘면서 수출 감소 폭은 -25.8%(7월), -36.6%(8월) 등으로 갈수록 커졌다. 미국에 대한 철강 제품 수출을 단념한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관세 25%면 수출 원가를 낮춰 수입처와 최대한 분담할 수 있었지만 50%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계약을 해지했다”고 했다.
철강 업계는 미국발 충격을 완화하려고 유럽으로 다각화를 시도해왔다. 하지만 EU 역시 관세 인상에 나서면서 이마저도 수포로 돌아갈 위기다. 앞서 유럽 현지 완성차 기업을 대상으로 자동차용 강판을 주로 수출하는 현대제철은 올 초 ‘유럽영업실’을 신설했고, 동국씨엠도 폴란드에 공장을 보유한 아주스틸 인수를 작년 마무리하며 유럽 사업을 확대하는 상황이었다. 철강 업계에선 “미국 관세 50%가 강풍 수준이었다면, 최대 수출 시장인 EU(유럽연합)의 50% 관세는 태풍 이상의 충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