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면서 전력 당국은 ‘블랙아웃(blackout) 비상’이 걸렸다. 전력 수요는 급감하는 반면 가을 햇살에 태양광발전량이 치솟아 전력 과잉 공급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전력망은 공급이 넘쳐도 대규모 정전을 유발할 수 있다. 블랙아웃 위험은 전력 수요가 적은 봄가을에, 특히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수록 증가한다. 발전량 조절이 가능한 기존 발전소와 달리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태양광·풍력은 예측·통제가 어려운 탓이다. 재생에너지가 생산하는 전기는 입찰 과정 없이 무조건 공급할 수 있도록 특혜를 받고 있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극적인 해법이 제주도에서 입증됐다. 전국 최악 수준이었던 제주도의 전력 과잉 공급 문제가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재생에너지 입찰제’를 도입하자,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해 발전소 가동을 강제로 멈추는 ‘출력 제어’ 현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무조건 사주는 대신 경쟁을 붙인 결과다.
제주도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급증하면서, 매년 전력 공급 과잉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그 심각성을 보여주는 게 출력 제어 빈도다. 2일 한국전력거래소가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의 출력 제어 건수는 2022년 총 132회에서 2023년 181회로 급증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태양광이나 풍력 가동을 멈춘 것이다. 가동을 강제로 중단당한 발전소에는 한전이 그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2024년도 5월까지 80회나 출력 제어가 이뤄졌다. 전력량으로 환산하면 각각 28.9GWh(기가와트시), 35.6GWh, 11.8GWh였다. 2023년의 35.6GWh는 국내 4인 가구 8500세대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막대한 전력량이다. 그게 허공으로 날아간 셈이다.
◇재생에너지 입찰제 참여시키자 출력 제어 ‘0’
그런데 지난해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제주의 풍력·태양광 강제 출력 제어는 총 3회에 불과했다. 이 3회도 작년 일이고, 올 들어서는 출력 제어가 한 번도 없었다. 정부가 제주도에 재생에너지 입찰제를 도입한 뒤 나타난 극적인 변화였다. 제주도 곳곳의 태양광·풍력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매일 입찰을 통해 전력망이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발전하도록 한 것이다. 값싼 가격 순대로 먼저 사주는 시장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그랬더니 출력 제어 문제가 말끔히 사라졌다.
전력 입찰제는 원자력·석탄·LNG(액화천연가스)·양수발전 등에는 이미 적용되고 있다. 다음 날 전기 생산 가능 규모와 단가를 매일 전력거래소에 제출(입찰)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전력의 생산과 수요를 최대한 일치시키는 것이다.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운영된 이 전력 입찰 시스템은 재생에너지가 급격히 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생에너지는 한전이 별도 입찰 과정 없이 무조건 구매해야 한다. 과잉 공급과 출력 제어 부작용이 등장한 배경이다.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육지보다 출력 제어가 먼저 시작된 제주도에 작년 6월부터 입찰제를 시범 도입한 것이다.
◇대정전 막으려고 4만 세대 1년 쓸 전력 차단
전문가들은 제주도의 실험을 육지에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육지 지역도 전력망 확충 없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만 늘어난 탓에 출력 제어 횟수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대정전은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온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2023년 0.3GWh 수준이던 육지 출력 제어량은 올해 상반기 164GWh로 늘었다. 164GWh는 3만9000세대(4인 기준)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이재명 정부가 재생에너지 속도전을 예고한 터라 대정전 공포는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철규 의원은 “정부는 무분별하게 보급만 늘릴 것이 아니라 입찰제 육지 도입 등 재생에너지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책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이 수익 감소를 우려해 입찰제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걸림돌이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정부는 보상 수준 인상 등 유인책을 잘 설계하고 재생에너지 사업자들도 전력 계통의 안정화를 위해 양보할 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력 입찰제
전력 입찰제는 발전소들이 전기를 어떤 가격에 얼마나 생산할지 제시하면 전력거래소가 가장 싼 순서로 줄을 세워 다음 날 필요한 전력 수요만큼을 낙찰하는 방식이다. 기대 이익 정산금은 발전소가 계획한 만큼 전기를 생산하지 못했을 때 잃게 되는 수익을 한전이 보전해 주는 제도다. 주로 한전이나 전력거래소가 전력망 안정을 이유로 발전소에 강제 중단을 지시할 때 지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