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1일 인공지능(AI) 산업 분야에 한해서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금산 분리 등 규제의 일부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는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참석해 오픈AI와 협력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삼성과 SK 등 국내 관련 기업이 반도체 공장 등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 유치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금산 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독점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는 범위에서, 또 다른 영역으로 규제 완화가 번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현행 규제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금산 분리 규제는 원칙적으로 대기업 같은 산업 자본이 은행이나 자산운용사 등 금융회사를 경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혁신 사업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면서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만들어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는 것은 가능해졌다. 하지만 CVC는 지주회사의 100% 자회사여야 하고, 차입과 외부 자금 조달에 제약이 많다. 반도체 공장처럼 수조 원이 들어가는 사업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 투자자에게 돈을 모아 펀드를 만들어 주도적으로 투자하는 GP(위탁 운용사) 역할도 할 수 없다.
◇현재는 반도체 대규모 투자 어려워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규제를 완화해 반도체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펀드를 만들어 외부에서 자금 조달을 할 길을 열어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CVC 모델과는 무관하지만, 규제 완화 여부에 따라 삼성 그룹 내 금융 계열사 자금을 AI 관련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김 실장은 “금산 분리 완화는 논쟁적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도 “각 나라의 전략 산업에 있어서는 새로운 시대 환경에 맞춰 (규제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한편 샘 올트먼 오픈AI CEO(최고경영자)는 이 대통령 예방에 앞서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을 잇따라 만나 ‘스타게이트 메모리 반도체(HBM) 공급 파트너십’ LOI(투자 의향서)를 체결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전체 D램 물량은 월 약 110만장(이하 웨이퍼 기준)이다. 오픈AI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고성능 D램 월 90만장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전체 D램 생산량이 181만장 정도”라며 “특히 고성능 제품만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이라 지금보다 공장을 더 짓는 등 생산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포항·전남 수조 원 규모 데이터센터 추진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별개로 국내에서 삼성과 SK는 오픈AI 전용 데이터센터도 구축한다. 실현된다면 각각 수조 원 규모 투자가 이뤄질 전망이다. SK는 전남 지역에 오픈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SK는 이미 아마존과 손잡고 울산에 7조원 규모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는데, 전남 데이터센터까지 만들어 동서 AI 벨트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삼성도 삼성SDS를 주축으로 포항에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방안을 오픈AI 측과 논의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삼성SDS는 오픈AI와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의 설계와 구축, 운영 분야에서 협력하고 오픈AI의 기업용 서비스인 ‘챗GPT 엔터프라이즈’도 국내에 도입하기로 했다. 이 서비스는 기업들이 자사 자료를 AI에 학습시켜 맞춤형 챗봇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서비스다. 또 삼성중공업과 삼성물산은 차세대 기술로 불리는 ‘플로팅 데이터센터’를 공동 개발한다. 해상에 설치하는 첨단 데이터센터로, 육지보다 공간 제약이 적은 데다 데이터센터의 효율을 좌우하는 열 관리가 수월하다는 게 장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번 협력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중심에 서서 글로벌 AI 패러다임을 선도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최태원 회장도 “AI 디지털센터는 대한민국 AI 인프라를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또 하나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산분리(金産分離)
대기업(산업자본)이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기관 지분을 일정 수준 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금융회사도 함부로 계열 제조업체를 지배하거나 과도한 지분을 갖지 못하게 막는 규제다. 기업이 금융기관을 자기 금고처럼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