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유화학 울산고무공장. /금호석유화학 제공

한국 석유화학 산업이 직면한 위기는 10여 년 전 일본 석유화학 업계 상황과 흡사하다는 것이 우리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다만 한국 업계와 정부의 위기의식 수준과 실행력은 일본과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4년 말 일본 경제산업성은 업계 10사에 연간 생산량 720만t에 이르는 에틸렌 설비를 자율적으로 통폐합하라고 권고했다. 중국의 자급률은 상승하는데 일본 내수 시장 위축이 겹치면 2020년 에틸렌 수요가 470만t까지 급감할 수 있다는 전망에 따른 조치였다. 일본 정부는 기업 간 통폐합 과정에서 독과점·담합 이슈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거래법상 예외를 허용하고, 양도소득세·취득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을 통해 기업 간 ‘빅딜’의 길을 터줬다.

2015년 미쓰비시화학이 에틸렌 제조 설비 일부를 정지했고, 이듬해 스미토모화학·아사히카세이 같은 대형 업체들이 뒤를 따랐다. 그 결과 일본 에틸렌 생산 설비는 현재 600만t 초반으로 축소됐다. 일본 업계는 폴리에틸렌(PE·비닐봉지 등), 폴리프로필렌(PP·자동차 부품 등) 등 특정 범용 제품을 중심으로 통합 회사를 설립하며 합종연횡에 나섰다.

지난해부터는 중국발 공급 쇼크와 정부의 친환경 지원 정책 등을 계기로 2차 구조 개편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는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설비 개선에 투자하면 투자액의 최대 10%까지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는 유인책 등을 제시했다. 이후 각사 시설 통폐합 발표가 잇따라 현재 12기에 달하는 에틸렌 생산 시설은 2030년 8기로 줄고, 생산 능력도 430만t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일본 석유화학 업계가 10년 넘게 구조 조정을 꾸준히 이어온 것은, 과거 위기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다. 일본 업계는 1990년대 버블 경제가 붕괴한 뒤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내수 시장 침체를 경험했다. 한국과 중국 기업들에 역전을 당했다. 김기식 국회미래연구원장은 “과거 경험을 통해 ‘늦으면 모두 망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일본 민관을 움직이게 했다”며 “우리 정부와 기업도 더 적극적으로 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