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하며 장기화하자, 정부가 기업들에 개별적인 대미 투자 발표나 대미 사업 홍보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기업들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미 협상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인 것으로 보입니다.
홍보 자제령의 타깃이 된 대표적인 예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위대하게)’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지난 7월 말 한미 관세 협상이 큰 틀에서 타결됐을 때만 해도 정부는 ‘마스가가 협상의 돌파구가 됐다’며 앞장서 홍보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조선 업계는 마스가를 앞세워 대미 투자 방안들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협상이 옴짝달싹 못 하는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정부는 ‘마스가’ 홍보를 자제해달라고 기업들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미 협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개별적으로 나서지 말라’는 경고성 조언이 전달됐다는 겁니다. 최근 미국에서 글로벌 투자자 행사를 연 한 대기업도 ‘독자 행보를 삼가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협상 장기화로 기업들은 엄청난 중압감 속에 속앓이를 하는 처지입니다. 지난 2분기 우리 기업들이 대미 수출 과정에서 부담한 관세는 33억달러(약 4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전인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47배나 급증한 수치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원 팀’ 기조를 강조하며 홍보도, 위기 호소도 차단한 채 ‘조용히 버티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입니다.
기업들은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반도체·배터리·철강·자동차 등에서 1500억달러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정부도 미국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며 관세 후속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협상이 장기화되자 정부는 기업의 ‘각자도생’을 우려하며 침묵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으는 원 팀 전략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당장 눈앞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기업들의 자율성을 해치고, 더 나아가 손발을 묶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