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전기요금 체계 개편으로 중소기업의 전기세 부담이 커진 지난 2021년 경남 밀양시의 한 중소기업 공장 내부/김동환 기자

전기 요금의 ‘정치적 결정’ 구조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시절은 문재인 정부 때다. “탈원전을 해도 전기 요금 인상은 없다”고 선언한 문 전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전기 요금을 딱 한 차례 올리는 데 그쳤다. 당시 팬데믹과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LNG(액화천연가스)·원유·석탄 등 연료비가 치솟았지만, 문 정부는 물가 자극에 따른 여론 악화를 의식해 전기 요금 동결을 고수했다.

심지어 문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요금 산정에 국제 연료비 변동 반영)를 직접 도입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 이 제도는 연료비가 하락할 때만 신속하게 작동했다. 연료비 연동제를 처음 도입한 2021년 1분기에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을 이유로 kWh(킬로와트시)당 3원을 내린 문 정부는 국제 연료비 폭등이 본격화한 그해 2·3분기에는 요금 인상을 외면했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쌓인 한전 적자는 약 36조원에 달한다.

후임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5년 동안 쌓인 청구서를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임기 동안 총 7차례 전기 요금을 인상했다. 문 정부보다는 요금 정상화 노력을 기울인 셈이긴 하나, 이때도 정치적 결정 구조는 여전했다. 여론 악화를 의식해 주택용 요금보다는 저항이 덜한 산업용 요금 위주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2022~2024년 산업용 전기 요금은 7번 연속해서 총 인상 규모는 kWh당 73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다른 종별 요금이 5차례에 걸쳐 40원가량 오른 것에 비하면 산업용은 거의 두 배 가까이 인상된 것이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 산업용 전기 요금 판매 단가는 kWh당 179.2원으로 주택용(155.5원)보다 비싸졌다.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원칙적으로 총괄원가를 기준으로 산정하도록 돼 있다. 총괄원가에는 전력 구입비와 송배전 투자비, 유지보수 비용 등이 포함된다. 즉 한전이 판매하는 전기의 가격이 원가에 못 미치면 요금을 인상해야 하고, 반대로 원가보다 비싸게 팔아 초과 수입이 발생하면 요금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한전이 원가 변동 상황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 요금 조정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하면, 산업부는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 협의한 뒤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전기 요금을 고지한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일 뿐, 실제 전기 요금 결정권이 대통령실에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통령실 의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산업부와 기재부의 협의 과정에 전달된다.

에너지 학계 전문가는 “전기 요금 조정 절차를 보면 ‘기재부 장관​은 필요시 원가 산정의 적절성, 소비자 부담, 국민 경제적 효과 등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시행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여론과 표심을 의식한 대통령실의 입김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력 당국이 수치를 공개하고 있진 않지만, 에너지 업계는 산업용 전기 요금의 원가 회수율을 130% 정도로 본다. 원가가 100원이면 130원을 받고 판매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주택용 전기 요금의 원가 회수율은 약 70%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이 “산업용 요금은 내리고, 주택용은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입을 모아 정치가 전기 요금을 결정하는 현 구조에 우려를 표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표심을 계산하면서 산업용 요금만 지속해서 인상하고, 가정용 등 다른 비용 인상에는 소극적인 정치 탓에 전력 시장이 망가지고 있다“고 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지금과 같은 산업용 전기료 수준이 계속되면 기업의 오프쇼어링(생산기지 해외 이전) 현상도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