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구광모(맨 오른쪽) 회장이 그룹 내 한 사업장을 방문해 기술관련 설명을 듣고 있다.

구광모 LG 회장이 지난 24일 경기 이천 LG 인화원에서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중국 경쟁사들은 우리보다 자본, 인력에서 3~4배 이상의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며 차별화를 위해 AX(인공지능 전환) 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LG는 전자·화학·배터리 등 주력 계열사들이 중국과 경합하는 분야가 재계의 다른 그룹보다 유독 더 많다. 구광모 회장도 이런 점 때문에 중국과의 경쟁과 관련해 수시로 내부에 위기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LG에 따르면 이날 경기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LG유플러스 등 주요 계열사 최고 경영진과 각사 AX 전략을 총괄하는 CDO(최고디지털책임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LG는 통상 분기에 한 차례씩 사장단 회의를 열고 중장기 경영 전략을 논의한다.

구 회장은 “(그동안 LG가 강조해왔던) 구조적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인식에 동의한다”면서 “사업의 선택과 집중, R&D(연구·개발)를 통한 차별적 경쟁력 확보, 구조적 수익체질 개선 등 크게 3가지를 논의해 왔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구광모 회장은 이전에도 직원들에게 수시로 중국과의 경쟁을 의식하며 성장 전략을 짜줄 것을 주문해왔다. 구 회장은 지난 6월 인도네시아 카라왕 신산업단지에 있는 현대차와 LG엔솔 합작공장을 찾았을 때도 중국 기업들의 현지 전략을 보고 받고, “5년 뒤에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전략을 짜달라”고 했다. 지난 2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와 수도 뉴델리 등을 찾았을 때도 “중국 기업과의 차별화 전략, 지속 가능한 1등이 되기 위한 방안을 준비하고 실현해달라”고 했다.

실제 이날 사장단회의에 참석한 계열사는 대부분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는 상황이다. 주력인 LG전자의 경우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기업들에게 중저가 시장을 점점 내주면서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LG이노텍 포함)이 1조8985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영업이익률은 5.9%에서 4.3%로 줄었다. LG디스플레이는 작년 대형 LCD 시장에서 철수하고 세계 선두권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분야도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다. 작년 4분기와 올 1분기 분기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난 2분기 다시 영업손실 116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LG화학은 중국발 공급과잉 속 알짜 사업부를 줄매각하며 사실상 구조조정에 들어간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를 중심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지만, 최근 조지아에서 대규모 체포 사태를 겪으며 충격을 받았고, 미국 외 지역에서는 CATL 등 중국 배터리 기업과의 경쟁에서 고전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LG가 AI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다른 계열사들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고전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른 그룹에 비해 주력 계열사들이 상대적으로 중국의 공세가 거센 분야에 있다는 게 어려운 점”이라고 했다.

구광모(오른쪽)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 설계 업체 ‘텐스토렌트’의 짐 켈러 CEO(최고경영자)와 회동한 뒤 기념 촬영을 한 모습. LG그룹은 ‘ABC(AI·바이오·클린테크)’를 미래 핵심 사업으로 삼고, LG AI연구원을 중심으로 자체 개발한 AI ‘엑사원’을 고도화하고 있다. /LG그룹 제공

LG는 국내 기업들 가운데 가장 앞선 분야 중 하나인 AI를 앞세워 중국발 불확실성을 돌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날 사장단 회의에서 인공지능 전환이란 뜻의 AX( AI Transformation )가 핵심 키워드로 거론된 이유다. LG그룹은 “생산력을 높이고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AX 전략 실행에 몰입할 시점이라는 데 인식을 함께했다”며 “이런 변화의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경영진 주도의 명확한 목표 설정이 중요하고 신속한 실행이 필수적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한편 구 회장은 “회사는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곳인 만큼 최고 경영진들이 구성원들의 안전에 대해서도 세심히 챙겨 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체포 사태와 관련한 발언이라고 LG그룹은 설명했다. 구 회장은 이번 사태 발생 직후 주요 경영진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구성원들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긴밀한 대응을 주문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