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글로벌 2000대 기업에 포함된 한국 기업은 2015년 66곳에서 올해 62곳(-6%)으로 줄어든 반면 중국은 180곳에서 275곳으로 95곳(5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도 575곳에서 612곳으로 37곳 증가했다. 리스트에 포함된 한국 기업의 전체 매출액은 2015년 1조4700억달러에서 2025년 1조6900억달러로 약 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중국과 미국 기업은 총매출이 각각 95%, 63% 늘었다. 중국 주요 기업의 매출액이 늘어나는 속도가 한국의 6.3배에 달하는 셈이다. 이는 미국 유력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매출·이익·자산 등을 기준으로 매년 세계 상위 기업 2000곳을 선정하는 ‘글로벌 2000’ 통계의 지난 10년치를 대한상공회의소가 분석한 결과다.

23일 대한상의에 따르면, 한국은 글로벌 2000대 기업 숫자뿐 아니라 경영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중국과 격차가 뚜렷했다. 예컨대 중국 기업 가운데 온라인 쇼핑몰 기업인 알리바바의 매출은 약 1364억달러로 지난 10년간 11배 늘었다. 전기차 BYD는 매출이 12배, 인터넷 기업 텐센트는 7배 이상 증가하는 등 첨단 기술 분야 기업들이 전체 성장세를 주도했다. 미국도 인공지능(AI) 대전환을 주도하는 엔비디아 매출이 10년간 28배 늘어나고 마이크로소프트(3배), 유나이티드헬스(3배) 같은 기술 기업들이 성장을 뒷받침했다.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가 10년간 매출액 성장률이 13%, 현대차는 51%에 각각 그쳤다. SK하이닉스가 매출이 512억4000만달러로 3배 이상이 돼 그나마 상승 폭이 컸다. 한국에서 비교적 신생 기업으로 꼽히는 곳 중에선 크래프톤·셀트리온·카카오뱅크 등 게임·바이오·핀테크 분야의 기업들이 새로 글로벌 2000에 이름을 올렸지만 순위가 1600위 이후라 중국이나 미국에 비해선 존재감이 미미했다.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 면에서도 중국과 미국에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 2787% 클때 삼성전자는 13% 성장

포브스의 ‘글로벌 2000’에 포함된 미국과 중국, 한국 기업들의 면면을 비교해보면 세 나라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전통을 가진 대기업과 신생 기업들이 첨단 산업 분야에서 균형 있게 성장하고 있었다. 중국은 신생 기업들의 약진이 뚜렷했다.

미국에선 AI 대전환의 선두에 선 엔비디아가 매출 성장률 2787%를 기록한 가운데, 유나이티드헬스(314%, 이하 매출성장률), 마이크로소프트(281%), CVS헬스(267%) 등 첨단산업·헬스케어 기업이 성장을 주도했다. 이런 가운데 스톤X(금융상품 중개), 테슬라(전기차), 우버(차량 공유) 등 새로운 분야 기업들이 강자로 등장하며 기업 생태계 전체가 성장했다.

중국에선 전기차업체 BYD의 매출성장률(1188%)이 돋보였다. 그 뒤를 이어 알리바바(IT), 텐센트홀딩스(온라인 미디어·게임), BOE테크놀로지(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IT 분야 기업들이 중국 기업 생태계의 물갈이를 이끌며 중국 경제의 도약을 주도했다. 또 파워차이나(에너지)·샤오미(전자제품)·디디글로벌(차량 공유)·디지털차이나그룹(IT 서비스) 등 에너지·제조업·IT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군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강자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글로벌2000에 가장 많은 기업이 이름을 올린 나라는 미국(612개)이었다. 다음이 중국(275개), 일본(180개) 순이었다. 한국은 인도(70개)와 영국(68개)에도 순위가 밀려 2015년 4위에서 6위로 떨어졌다.

대한상의는 “한국 기업 생태계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지원은 줄고 규제는 늘어나는 역진적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한 해에 중소기업에서 중견으로 올라가는 비율이 0.04%, 중견에서 대기업이 되는 비율이 1~2% 정도”라며 “미국이나 중국처럼 다양한 업종에서 무서운 신인 기업들이 빠르게 배출되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또 “일정 지역·업종에서라도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은 ‘균등 분배’보다 ‘성장 가능성 높은 프로젝트’ 위주로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