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공사가 21일 “대왕고래 구조에 대해 추가 탐사는 없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6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 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한 지 약 15개월 만에 첫 시추는 실패했음을 확인한 것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라며 “석유는 4년, 천연가스는 최대 29년간 우리나라 전체가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석유공사가 ‘경제성 없음’ 판단을 내린 것은 유전(油田)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조건들이 시추를 통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트랩(trap)’ 구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유전이 존재하려면 근원암·저류암·덮개암과 트랩이라는 4대 조건이 필수다. 석유·가스를 생성하는 성분을 포함한 근원암에서 만들어진 석유가 구멍이 많은 구조의 저류암에 스며들고, 물보다 가벼운 석유·가스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해주는 덮개암이 둘러싸고 있어야 한다. 그 결과 석유·가스가 한곳에 모이도록 하는 구조를 트랩이라 한다. 이 구조가 확인되지 않아 경제성 높은 석유·가스가 검출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트랩’ 불충분한 게 문제
석유공사가 공개한 ‘대왕고래 구조 시추 결과’에 따르면, 저류암과 덮개암의 두께는 시추 전 예상치와 비슷하거나 더 나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저류암은 석유·가스가 채워지는 빈 공간을 말하는 공극률(孔隙率)이 30.8%로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상업성을 결정하는 가스 포화도는 6.3%에 그쳐 당초 예상했던 50~70%를 크게 밑돌았다. 지층 전체가 100이라면 석유·가스가 존재할 수 있는 빈 공간이 30.8이고, 그중 6.3%인 1.94만이 가스로 채워져 있었다는 뜻이다.
가스의 종류도 예상과 달랐다. 당초 석유공사는 수백만 년간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형성된 경제성 높은 열원가스가 존재할 것으로 봤지만, 실제 시추해보니 어류·플랑크톤 등이 낮은 온도에서 단순 분해된 바이오가스만이 검출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만약 포화돼 있던 6.3%의 가스라도 경제성이 있었다면 대왕고래 구조에서 추가 시추를 했을 것”이라며 “경제성 있는 석유·가스는 다른 유망 구조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외국 기업 기술력 더해지면 성공률 높아질 것”
대왕고래 시추는 실패했지만, 동해 심해 가스전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대왕고래는 당초 정부가 시추 대상으로 삼은 7개 구조 중 규모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됐을 뿐 성공 확률이나 상업성이 ‘오징어’ ‘명태’ 등으로 명명된 다른 구조에 비해 큰 것은 아니었다. 남은 유망 구조에 외국계 기업이 투자할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많다.
석유공사도 2차 시추를 추진하고 있다. 석유공사는 지난 19일 마감된 ‘동해 해상 광구 투자 유치 입찰’에 복수의 외국계 기업이 참여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 3월부터 6개월간 이어져 온 입찰에는 영국 BP와 미국 엑손모빌 등 외국계 빅 오일 2~3곳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석유공사는 투자 유치 자문사인 S&P글로벌을 통해 탐사·시추 계획이 담긴 제안서를 검토한 뒤, 적합한 투자자가 나오면 다음 달 안에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할 계획이다. 최종 선정된 기업은 구체적인 시추 장소와 절차 등을 석유공사와 협의한 뒤 최대 49%의 지분을 갖고 2차 시추에 참여하게 된다.
참여 예상 기업으로선 2차 시추는 부담이 한결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첫 시추 결과도 있고 지난해 미국 지질 탐사 컨설팅 업체인 액트지오의 물리 탐사 자료도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이근상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는 “외국 석유 기업 입장에선 초기 투자 비용이 줄어든 만큼 사업에 뛰어들 리스크를 ‘감당할 만하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외자 유치에 성공하면 석유공사가 탐사와 시추에 들이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석유공사 단독으로 참여한 1차 시추에선 자체 예산 약 1263억원을 사용했다. 외국 기업의 기술력이 동반됐을 때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이번 입찰에는 심해에서 하루에 최소 10만 배럴 이상 석유·가스를 생산하는 등 요건을 충족한 기업들만 참여할 수 있어, 시추 경험이 풍부한 기업이 대다수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글로벌 메이저 회사가 참여를 확정한다면 이들의 기술 지원을 받아 시추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