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트닉이 ‘fix(해결하겠다)’라는 표현을 붙이겠다고 하더라. 본인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이슈였고,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인 투자 기업을 많이 받으려던 상황에서 갑자기 돌발 변수가 생기니 미국 정부에서도 곤혹스러웠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지난 11~12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만나고 온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6일 저녁, 취임 약 두 달 만에 출입기자단과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 직원 구금 사태로 불거진 ‘조지아 사건’이 한미 후속 협의 테이블에서 거론된 첫 번째 주제였음을 공개한 것이다. 그는 취임 후 러트닉 장관만 20번 만났다고도 했다.
협의 진행 상황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김 장관은 다만 지난 7월 타결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두고 ‘미국이 다 가져가는 것 아니냐’, ‘차라리 관세 25%를 주고, 기업들에 보조금을 주자’는 국내 시각이 제기된 데 대해서는 반박했다. 그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1500억 달러처럼 미국에 진출하는 우리 기업들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미국이 다 가져가는 걸로 생각하는데 그런 구조가 아니다”라고 했다.
일본이 관세를 15%까지 낮추는 대신 5500억 달러의 투자에 합의한 것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일본이 부유하기는 하지만, 5500억 달러를 미국이 다 가져가는 거면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꺼번에 그 많은 돈이 가는 것도 아니고, 딜을 자세히 보면 일본 측에 불리하거나 국내법에 맞지 않으면 안 하게 돼 있다”면서 “일본은 자동차와 전체 품목 관세에서 유리한 고지를 먼저 선점하겠다는 계산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 기업 우대 조항도 있다. 관세에도 도움이 되고 기업에도 도움이 되면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관세 협상 관련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언급한 대목에 대해서는 “우리가 제안하는 안에도 미국 입장에선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것들이 꽤 많다”면서 “제가 말은 조용히 하지만, 책상을 치고 목소리가 올라가기도 한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저서 ‘협상의 기술’을 3번 읽었다는 김 장관은 “10을 요구하고 싶으면 100을 요구하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협상을 할 때마다 (미 측이) 아, 이렇게 하는구나 느끼고 있다”고도 했다.
협상 과정에서 느끼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도 공개했다. 김 장관은 “미국을 오갈 때마다 비행기에서 영화 ‘역린’을 본다”면서 “중용 23장 작은 것 하나라도 지극히 정성을 다하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대목이 나온다. 어쩔 땐 러트닉 비위도 맞춰야 하는데 대한민국에 조금 더 나은 뭐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정부 조직 개편으로 에너지 정책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을 지낸 그는 “산업과 에너지는 한몸처럼 유기적으로 가야 하는데 (에너지가 분리되는 것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라면서도 “정부 전체에서 결정된 것이니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기후에너지환경부 약칭을 ‘에너지부’로 하고 싶다. 에너지 파트가 환경을 잘 이끌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원전 수출을 산업부 소관으로 남긴 데 대해선 “국내 400~500개 기업과 연결돼 있어 산업부가 맡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한 걸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 건설’이 담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더 필요하다는 김성환 환경부 장관의 입장에 대해선 “입장이 명확하다”며 “신규 원전 2개, SMR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게 당장의 이슈가 아니라 2035~2036년 전력 수요에 대비하는 것”이라며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면 전력에 대한 그런 수요가 불가피하다는 상황이 되고 결국 그렇게(원전 신규 건설) 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국내 현안에 대해서도 언급이 이어졌다. 그는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생각보다 기업들이 노력하고 있다”며 “10월쯤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산업 구조 재편이 정부와 기업, 금융권 공동 작품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가장 큰 원동력은 기업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다. 정부는 그 절박함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우리는 8월에 발표하고 한 달쯤 됐다. 지켜봐 달라”고도 했다.
제조업(M)의 인공지능 전환(AX)을 지원하기 위해 최근 출범한 ‘M.AX 얼라이언스’에 대해선 “통상을 제외한다면 자신의 1순위”라고 했다. 김 장관은 “우리 제조업의 성패는 AX에 달렸다”면서 “한 달에 두 번씩 얼라이언스를 만나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