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구금자들은 악몽 같았던 체포 순간을 떠올렸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 조영희(44)씨는 면도를 하지 못해 초췌한 모습이었다. 조씨는 “수갑을 채우고 쇠사슬까지 채우는 걸 보고서야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매우 강압적이고 우리를 범죄자 취급을 하던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뭔가 이거 좀 잘못됐구나’ 식으로 태도가 바뀌는 걸 느꼈다”고 했다. B-1(단기 상용) 비자를 받아 설비 엔지니어로 파견됐던 장영선씨는 “장갑차와 헬기까지 단속을 나왔지만 비자 문제가 없으니 당당하게 임했는데 구금될 줄 몰랐다”고 했다.
경기 용인에서 온 손병두(59)씨는 아들(32)이 LG엔솔 협력사 소속으로 배터리 모듈 장비를 설치했다고 한다. ESTA(전자여행허가)를 받고 올해도 미국 출장을 여러 번 다녀왔다고 한다. 손씨는 “단속 직원 대여섯 명이 뒤에서 총을 들이대고 ‘엎드려’ 지시를 하고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든 소지품을 압수해 체포했다고 아들이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범죄자 취급하다 태도 바꿔
이날 오후 인천공항 2터미널 입국장에선 환호와 안도의 한숨이 교차했다. 가족 대기 장소가 마련된 공항 장기 주차장은 울음바다가 됐다. 충남 서산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이용주(69)·김순덕(64)씨 부부는 “공대를 나와 미국에 파견 간 아들이 구금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추밭에서 펑펑 울었다”고 했다. 하필 사건이 벌어진 날 아들의 안부를 묻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지만 회신이 없어 애를 태웠다고 한다. “지난 일주일 밥알인지 모래알인지 모르고 끼니를 넘겼다”는 부부는 아들을 보자 달려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귀국자들은 열악했던 구금 생활도 털어놨다. 협력사 직원 전상혁(56)씨는 “처음엔 70명이 한 방에서 지내는데 화장실은 대여섯 개, 모두 오픈(개방)된 곳이었다”며 수갑에 족쇄까지 찼다고 했다. 구금자들은 이후 2인 1실 방으로 옮겼다고 한다. 조영희씨는 “구금 시설에서 2인 1실을 쓰며 숙식을 했는데 변기가 같이 있었다”며 “그런 것들을 모두 오픈 된 장소에서 해결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몇 번이나 다녀온 출장, 갑자기 왜”
귀국한 직원과 가족들은 “몇 번이나 다녀왔던 출장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해 충격이 더 컸다”고 했다. 서울 도봉구에서 온 전모(67)씨는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해 장기 주차장 한가운데 ‘류몽실 아빠’라고 적힌 환영 피켓을 세웠다. 부부가 키우는 반려견 이름이었다. 전씨는 “내 남편이 고생하다 들어왔는데 이 정도는 해야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전씨의 남편은 베테랑 전기 기술자로 수차례 현장 출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지난 7월 출장을 갔다가 이번에 구금을 당했다고 했다.
충북 청주시에서 온 손모(75)씨 부부는 “아들이 몇 번이나 미국 출장을 갔던 터라 구금 소식을 듣고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손씨의 아들은 LG엔솔 청주 오창 공장에서 전기 발전 관련 엔지니어로 일했다고 한다. 손씨는 “이번 출장과 지난 5월 출장 직전에 아들이 전화로 ‘좀 불안하다’고 하더라”며 “비자 문제를 알았던 것 같다”고 했다. 한 협력업체 직원의 아내(67)도 “남편이 지난 4월에도 출장을 갔다가 6월에 돌아와 다시 갔다”며 “늘 이런 식으로 출장을 다녀와서 남편도 크게 문제 될 것으로 생각을 안 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귀국자들이 입국장으로 나올 때마다 기다리던 가족과 직장 동료들은 “저기 나온다”고 외치며 달려가 맞았다. 귀국한 직원들은 각각 치약, 칫솔이 든 작은 비닐백이나 백팩만 지닌 채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옮겨 미리 준비된 차량으로 이동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귀국한 직원들을 위해 홍삼 건강식품, 임시 휴대전화를 미리 준비해 전달했다. 또 본사와 협력사를 포함해 귀국자 전원에게 이날부터 추석 연휴까지 유급 휴가를 부여하고, 귀국 후 4주 안에 건강 검진과 심리 상담 프로그램도 제공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