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관에선 단기 상용 비자(B-1)가 있어도 공장 셋업(set up·설립)이 가능하다고 해 왔어요. 미국에서 3년 넘게 셋업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입니다.”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 앞에서 만난 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 와이티에스의 홍상표 사장은 “B-1 비자가 전자 여행 허가(ESTA)보다 받기가 훨씬 까다롭기 때문에 문제없을 줄 알았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현지 공장에서 자동화 시스템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업무를 맡는 PLC 엔지니어 등 8명의 직원을 마중 나왔다고 했다.
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당국의 단속으로 구금됐다 귀국한 우리 국민 316명은 대부분 B-1이나 ESTA 소지자라고 한다. 그 비율은 1대1 정도라고 했다. 주재원 등이 이용하는 E 비자와 L 비자 소지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날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B-1 비자에 대한 한미 양국 간 해석의 차가 있다고 인정했다. 강 비서실장은 “지금까지 B1 비자로 설비라든지 (설치가) 가능하게 돼 있고 ESTA도 일정 정도 그에 준해서 움직인다는 것이 전제돼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나가서 새로 (공장을) 건설하거나 이러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이라며 “그런데 이번에 이 문제에 대해 미 당국이 클레임(항의)을 걸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미 당국과의) 워킹그룹에서 조속히 논의해 문제의 근본적인 불신의 씨앗을 없애야 대한민국 기업도 향후 안전하게 믿고 투자하고 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복수의 협력사들에 따르면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B-1 비자로 진행할 수 있는 업무에 ‘외국 기업에서 구입한 장비의 설치, 서비스 또는 수리’를 명시하고 있다. 또 미 국무부는 B-1 비자로 허용되는 상용 목적의 활동을 비자 면제 프로그램(ESTA)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운영하는 비자 안내 사이트에서도 출장자가 ‘일시 업무’라고 입력하면 B-1 비자나 ESTA를 권고하는 것이 확인된다.
미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건설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뒤, 협력사들은 ‘비자 불확실성’에 따른 공포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번 공사의 경우는 완공이 멀지 않은 단계라 계약 조건상 지금까지 진행된 공사 분량에 대해선 매출을 인정받을 수 있어 당장의 실적 타격은 크지 않다. 문제는 다음 프로젝트들이다. 이 협력사들 중에는 반도체·조선·배터리·소재 등 우리 기업들의 현지 대형 투자 프로젝트를 수주한 곳들이 많다.
한 장비 업체 관계자는 “조지아주 공장 건설 중단으로 인한 매출 타격은 크지 않지만 수주해 놓은 장기 프로젝트를 안심하고 진행하려면 안정적인 비자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야 무서워서 미국에서 사업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