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을 탈취하기 위해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한 지 1년이 지났다. 고려아연은 경영권을 지켰지만, 일부 이사회 자리를 MBK·영풍 측에 내줘야 했다. MBK·영풍은 고려아연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으나 정치권에 사모펀드 규제 강화 빌미를 줘 양측 모두 타격을 입었다.

MBK·영풍은 작년 9월 13일 고려아연 주식 144만5036주~302만4881주(발행 주식 총수의 약 7~14.6%)를 주당 66만원에 사들이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하며 경영권 인수를 시도했다. 고려아연은 이후 자사주를 매입하고 공개 매수 가격을 주당 89만원으로 제시하면서 가까스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이후 고려아연과 MBK·영풍은 24건의 소송을 주고받으며 장기전에 돌입한 상황이다.

그래픽=손민균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면서 고려아연 이사회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총 19명으로 소송에 걸려 직무 정지 상태인 4명을 제외하면 15명이 활동하고 있다. 15명은 고려아연 측 11명, MBK·영풍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영풍 측에서는 장형진 영풍 고문만 고려아연 이사회에 참석했으나 강성두 영풍 사장,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 권광석 전 우리은행장이 우군으로 합류했다.

고려아연은 최윤범 회장 등 이사 5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 대비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내년 3월 주총부터 적용되는 집중투표제를 통해 현재 이사회 구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의결권을 몰아서 행사할 수 있어 MBK·영풍보다 지분율이 열세한 최 회장 측에 유리하다.

그래픽=손민균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은 사모펀드 규제법이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특히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매각이 논란이 되면서 사모펀드의 차입 한도를 줄이고, 운용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자본시장법·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묶어 이른바 ‘MBK 사모펀드 규제법’을 발의했다. MBK 사모펀드 규제법은 ▲정보 공개 강화 ▲국민연금 투자 규제 ▲이해상충 방지 ▲차입매수(LBO) 규제 등을 도입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럽연합(EU)의 사모펀드 규제 지침(AIFMD)을 참고해 기업 인수 후 2년 내 고배당, 자사주 매입, 유상감자 등을 제한하고 차입 매수자가 자산을 매각하면 금융위원회 등에 보고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도 사모펀드 차입 한도를 순자산액의 400%에서 200%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MBK는 고려아연 지분에 쓴 상당 자금을 대출로 조달했다. 이 법안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이후 고려아연은 회삿돈으로 경영권을 방어한다는 비판을, MBK·영풍은 차입금으로 회사를 인수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며 “고려아연이 가진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양측 모두에 상처만 남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