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향후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 대해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대대적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기자회견에서 “인공지능(AI)을 위한 데이터센터 등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니 원전을 짓자고 하는데 기본적인 맹점이 있다”면서 “원전을 짓는 데 최소 15년이 걸리고 지을 곳도 지으려다 중단한 한 곳 빼고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 (짓기) 시작해도 10년 지나 지을까 말까인데 그게 대책인가”라면서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가장 신속하게 공급할 방법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라면서 “1∼2년이면 되는 태양광과 풍력을 대대적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새 원전 건설을 사실상 백지화한다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쇼크에서 겨우 벗어나 지난 3년간 투자와 인력 확충으로 어렵게 생태계를 재건해온 원전 업계는 “대통령의 발언은 탈원전으로 유턴 선언이나 마찬가지”라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특히 각종 원전 부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중소·중견기업 사이에선 “지금 건설 중인 경북 울진 신한울 3·4호기 공사가 끝나는 7~8년 뒤엔 존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억 들여 설비 새로 바꿨는데…”

원전 업계에서는 “장기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새 원전을 짓지 않으면 2032~2033년 완공되는 신한울 3·4호기 공사 이후 원전 업계에 일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기존 원전 유지·보수 말고는 기약할 수 없는 수출 소식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되면 원전 생태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국내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 원전 수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원전용 증기 발생기와 가압기를 생산하는 경남 창원 원비두기술 박봉규(65) 대표는 작년 9월 착공한 신한울 3·4호기에 들어갈 부품을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개점 휴업 상태를 겪었던 박 대표는 최근 20억원을 들여 탈원전 기간 방치됐던 설비를 새로 갈았다. 그는 “정부가 신규 원전 2기를 더 짓고 SMR(소형 모듈 원전) 사업도 적극적으로 한다고 해 투자를 했는데 3~4년 뒤부터는 일감이 없어지게 됐다”며 허탈해했다.

원전용 계측제어시스템(MMIS)을 개발하는 우리기술은 지난해 인력을 120명에서 170명으로 늘렸다. 이 회사 서상민 부사장은 “어렵게 구한 연구 인력들이 떠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李대통령 “원전 지을 데 없다”지만…

이 대통령은 이날 우리 원전의 현실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으로 일관했다. “(원전은) 실제 가동까지 15년이 걸린다” “원전을 지을 데도 없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공론화 절차나 인허가 등을 뺀 원전 건설 기간만 보면 10년이면 된다”고 말했다. 2016년 6월 첫 삽을 뜬 새울 3호기는 내년 2월 가동을 앞두고 있고, 작년 9월 착공한 신한울 3호기도 8년이 지난 2032년 11월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전 부지가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내년 새울 3·4호기 원전이 들어설 울산 울주군 주민들은 오히려 원전 유치에 나서고 있다. 2023년에는 주민 과반수가 새울 5·6호기 건설에 찬성하기도 했다. 당초 ‘천지 원자력발전소’를 짓기로 했다가 탈원전 여파로 건설 계획이 전면 백지화된 경북 영덕군도 유력한 신규 원전 후보지 중 하나로 꼽힌다. 2021년 원전 건설이 취소됐을 당시 영덕군은 경제적 피해가 3조원을 웃돈다며 주민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SMR에 대해서도 “기술 개발이 안 됐다”고 했다. 하지만 산업부와 과기부는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을 꾸리고 올해 말을 목표로 첫 단계인 표준 설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3년간 인허가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기술 개발의 첫 단추가 올해 안에 마무리될 계획이라는 뜻이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을 보니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떠오른다”며 “미국은 빌 게이츠가 SMR에 앞다퉈 투자하고 정부가 전폭적으로 밀어주는데, 우리는 대통령부터 기술 수준이 한참 멀었다며 기업들의 투자 의지를 꺾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