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IAA에 전시된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의 전기세단 P7(왼쪽)과 키 178cm짜리 로봇 '아이온'. /EPA 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 시각) 오후 독일 뮌헨 루트비히 거리에 마련된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의 전시관 앞은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계 최대 모터쇼 중 하나인 독일국제자동차전시회(IAA)의 야외 전시가 이뤄진 이곳에서 이들이 주목한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키 178㎝짜리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 ‘아이언’이었다. 행사 내내 로봇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섰고, 관람객들은 로봇의 다섯 손가락을 만져보며 관절 부위 등도 유심히 살펴봤다. 공식 발표 때 이 로봇이 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자 환호성이 터지기도 했다.

샤오펑 전시장의 이런 모습은 올해 IAA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가 한층 더 강화된 단면이란 평가를 받았다. 미·중 갈등으로 미국 진출이 아예 막힌 중국 기업들이 대안으로 유럽 공략에 속도를 내며 차별화를 위해 기술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유럽인 입맛에 맞춰 개발한 현지화 제품은 물론이고, 전기차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고속 충전 기능과 차세대 고성능 배터리, AI(인공지능) 기술 등이 적용된 자율 주행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국 완성차 기업 관계자는 “이미 중국의 핵심 경쟁력이 ‘가성비’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중국 기업들이 미·중 갈등으로 미국 진출이 막히자 이제 더욱 적극적으로 유럽을 공략하려 한다는 의지가 이번 IAA에서 더 확 느껴졌다”고 했다. 실제 올해 IAA에는 지난 2023년보다 40%가량 늘어난 103곳의 중국 기업이 참가했다.

◇기술력 자랑 나선 중국

샤오펑의 경우 IAA 발표 내용 대부분을 ‘기술’로 채워 주목받았다. 우선 9월 독일 뮌헨에 유럽 내 첫 현지 R&D(연구개발) 센터를 열기로 했다. 또 AI와 지능형 카메라를 활용한 자율 주행 기술이 적용된 ‘NEXT P7’ 전기 스포츠 세단도 유럽 최초로 공개했다. 폴크스바겐 전기 세단 ID.7보다는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IAA의 BYD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돌핀' 등 주요 차량들을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전기차 1위 업체인 BYD는 IAA에서 차별화한 충전 역량을 강조했다. ‘플래시 차징(Flash Charging)’이란 기술로, 5분만 충전해도 약 400㎞ 주행이 가능한 초급속 충전 시스템이다. BYD는 이런 시스템을 포함해 2026년 2분기까지 유럽 안에 200~300개의 충전소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BYD 내 고급 브랜드 ‘양왕’의 ‘U9 트랙 에디션’도 눈길을 끌었다. 이달 초 독일의 한 트랙에서 최고 시속 472.41㎞로 달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에 오른 스포츠카다.

배터리 업계도 기술력 자랑에 가세했다.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 CATL은 이번 IAA에서 대형 부스를 마련해, 리튬인산철(LFP) 기반 차세대 배터리 ‘션싱 프로(Shenxing Pro)’를 선보였다. 10분 충전하면 전기차가 최대 478㎞를 달릴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

그래픽=이철원

◇유럽 맞춤형 전략 강화

중국 기업들은 여기에 더해 유럽 맞춤형 전략도 잇따라 내놨다.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차 점유율은 2021년 5% 안팎에서 최근 10% 안팎까지 커졌다. 관세 장벽으로 진출길이 막힌 미국 대신 유럽에서 더 공세를 편 결과다. 이번 IAA에선 왜건이나 해치백 등 유럽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춘 차들을 대거 공개했다. 왜건은 세단보다 길고 넉넉한 트렁크 공간을 갖춰 장거리 이동이 많은 유럽 사람들이 선호한다. 차체가 짧은 해치백은 길이나 주차 공간이 좁은 유럽 도심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많다.

BYD의 경우 왜건 ‘실 6 DM-i 투어링’을 IAA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평소에는 전기로 주로 달리다 필요할 때만 가솔린 엔진을 쓰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인데, 최대 주행 가능 거리가 1305㎞에 달한다. 중국 스타트업 리프모터는 소형 전기 해치백 ‘B05’를 가장 앞세웠다. 폴크스바겐의 ID.3 등과 경쟁하는 차다. 리프모터는 또 합작 투자 관계에 있는 스텔란티스와 협력해 스페인에서 ‘유럽산 중국차’ 생산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