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중 워싱턴 총영사가 8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이하 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이 체포·구금된 사태는 현지 노조·지역 사회와 한국 기업 간 ‘고용 갈등’이 결국 폭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8일 ‘조지아 배터리 공장 급습, 흔들리는 산업에 새로운 위험을 더하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번 사건의 배경에 현지 노조와 한국 기업 간 갈등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조지아주 일부 노조들이 “76억달러 정부 보조금이 투입된 이 공장에서조차 미국인들이 배제됐다”고 반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지아주 15개 카운티의 배관·용접공 등을 대표한다는 노조 ‘Local 188’은 “한국인들이 조지아 공장에서 용접·배관공 등으로 일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인들이 맡아야 할 일이며 한국인들이 특수한 일을 하러 왔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들의 소속사나 역할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현대엔지니어링 협력사 소속 한국인 건설 인력 최소 60여 명이 현장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인이나 이민자 출신 인력만으론 대규모 현장 공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지휘해 본 한국인 현장 관리자들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지 노조엔 이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존재였던 것이다.

◇현지 노조는 ‘일자리 뺏겼다’

문제는 미국 노조들이 건설 영역을 넘어 전문적인 작업들도 자신들 몫이라고 주장하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 시절 미 에너지부 일자리국장을 지낸 베토니 존스는 NYT 인터뷰에서 “배터리 기업들은 지식재산권 보호에 매우 민감해 기계 설치와 유지 보수 같은 작업은 자사 인력을 직접 투입하지만 미국 노조들은 그런 작업도 자신들이 하겠다고 강하게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기업 관계자는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인력이 현지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정 관련 작업을 본국에서 온 인력에 의존하는 건 대만 반도체 기업 TSMC나 일본 배터리 기업 파나소닉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없는 첨단 제조 공정을 이식한다는 특성상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배터리 기업 LG에너지솔루션도 관련 장비를 한국에서 조달하고 협력사 전문 인력도 필수로 투입해야 하는 구조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 공장의 경우 이번에 연행·구금된 한국인 직원 상당수가 ‘이차전지 관련’ 협력사의 전문 인력들이었다. A 협력사의 경우, 이차전지 분리막 제조 관련 핵심 전문가들이 체포됐다. 미국 공장에 맞춰 A사가 생산한 장비를 설치하던 인원들이었다.

직원 5명이 체포된 B사는 배터리 공장에 필수적인 화학물질 처리 장비 기업이다. 그 외에 배터리 분리막 장착, 공정 가스 제거, 배터리 패키징 장비 관련 협력사 관계자들도 대거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스마트 공장 시스템을 개발한 LG CNS와 협력사를 비롯해, 배터리 장비 전문가인 일본·중국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전문 인력은 한국에서도 소수인데 해외 생산 기지 건설이 늘면서 세계 각국에서 파견 요구가 많아 안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최첨단 공정 들고 美 진출

미국에 첨단 생산 시설을 짓는 다른 한국 기업들도 같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내년 가동을 목표로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공장은 최첨단 2나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정을 적용한다. 현대차가 연간 생산 능력을 50만대로 확대한다고 밝힌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도 인공지능(AI), 로봇 등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스마트 전기차 공장이다.

이번 사태는 현지 노조의 불만을 넘어, 미국 정부의 속내까지 드러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구금 사태 직후 전문직 비자 발급을 늘릴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한국의 인력을 불러들여 우리 인력(미국인)이 배터리나 컴퓨터, 선박 제조 등 복잡한 작업을 할 수 있게 훈련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한국 기업들의 핵심 기술과 노하우까지 이전하라는 노골적인 요구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