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조지아주(州)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에 대한 무자비한 체포 사태는 미국에 투자 중인 다른 우리 기업들을 강타했다. 기업들은 미국 출장 자제령을 내리거나 “해외 출장 때 법·절차를 철저히 준수하라”는 긴급 지침을 내리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격앙된 반응이 쏟아져 나온다. “투자 유치 때는 ‘경제 동맹’이라더니 공장 건설에 필수적인 인력은 범죄자 취급이냐” “숙련된 현지 인력은 없고 비자 받기는 복권 추첨 수준인데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것이다. “미국이 비자 협력 없이 한국 기업 탓만 한다면 현지 사업의 성공도 장담하기 힘들다”며 “이런 식이라면 투자를 재고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비상 걸린 기업들 “미국 사업 줄지연될 듯”
이번 사태 당사자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6일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했다. 현재 출장 중인 직원들에겐 조기 복귀 지침을 내렸다. 현대차도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미국 출장을 보류하라’고 권고했다. 주요 대기업들도 미국 출장과 관련해 주의 사항을 공유하고 출장자가 합법적인 비자를 받았는지 여부를 긴급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기업 관계자는 “미국 비자 발급이 워낙 느리고 까다로운 탓에 절차를 지키려면 결국 전체 사업 속도가 대폭 느려질 수밖에 없고 현지 인력을 많이 쓰면 비용이 급증해 사업 유인이 줄 것”이라고 했다.
재계에선 한미 조선 협력 사업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현대제철의 미국 제철소 건설, 전력 기기 업체들인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의 현지 공장 증설이 줄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공장들의 건설과 조기 안정화를 위해선 본사 임직원과 협력사 직원 수백 명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과 미국 현지에 동반 진출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은 미국의 무자비한 단속이 계속될 경우, 사업 중단과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장기 출장을 보낼 인력 자체가 부족한데, 비자 문제로 사업이 지연될 경우 회사 존립을 걱정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조지아 공장을 포함한 현지 진출 협력사들에 따르면, 발급 요건이 까다로운 전문직 취업 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E2) 등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회의 참석·계약 등을 위한 상용 비자(B1)는 10명이 신청하면 겨우 3명 정도가 받을 수 있는데, 대기업 초청장과 계약서, 이력서 등을 첨부하고 면접까지 거치면 실제 파견까지 통상 4~5개월이 걸린다. 전자여행허가(ESTA)를 통해 70~80일 일하고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에 가서 일을 하는 관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연행·구금된 한국인 300여 명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LG엔솔의 협력사 직원이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박사는 “중소·중견기업은 원청 대기업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소수·전문 인력을 급히 파견해 실시간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ESTA 등을 고육지책으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번에 집단 체포 사건이 벌어진 공장에서 일하는 A씨는 “미 당국이 비취업 비자도 잘 내주지 않는 탓에 한번 입국한 직원들이 하루에 15시간씩 주 7일 근무해 왔다”고 전했다.
◇기업들도 안이했다
우리 기업의 대처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지 이민 당국의 강경한 기조가 이미 여러 차례 감지됐는데도 우리 기업들 안팎에선 ‘공기(工期)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이 앞섰다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직접 고용이 아니란 이유로 협력 업체 인력의 비자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조지아주 SK배터리아메리카(SKBA) 공장 건설 현장에서는 ESTA 비자로 입국한 협력사 한국인 직원 13명이 국토안보수사국(HSI)에 체포됐다가 자진 출국 조건으로 석방됐다. 미국 당국의 단속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 첫 사례였다. 이후에도 삼성, 현대차, LG의 현지 공장 건설을 위해 미국에 오려던 협력사 직원들이 무더기로 입국을 거부당하는 일이 이어졌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현지 언론도 여러 차례 ‘불법 취업’ 이슈를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