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각) 일본과의 무역 합의를 이행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일본산 제품에 대한 상호 관세와 자동차·부품 관세 모두 15%로 낮추기로 확정한 것이다. 이르면 다음 주부터 일본은 15% 관세를 적용받지만 한국은 25% 폭탄 관세를 그대로 적용받게 됐다. 대미 수출 자동차 관세의 한일 양극화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당초 한국과 일본은 지난 7월, 미국과 관세 협상을 통해 자동차·부품 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한국은 ‘서명 없는 합의국’으로 뒤처진 채 실무 협상을 반복하고 있다. 우리 자동차 업계는 비상이다. 현대차·기아는 25% 관세 여파로 올 2분기에만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이 넘게 감소했다. 자동차 관세 인하가 늦어지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 하락에 따른 실적 급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韓보다 먼저 ‘자동차 15%’ 따낸 日

미 백악관은 이날 ‘미·일 무역 합의 이행’에 관한 행정명령을 공개하고 일본산 수입품 대부분에 기본 관세 15%를, 자동차 및 차 부품에 대해선 품목 관세 15%를 부과한다고 명시했다. 미국은 지난 4월 3일부터 자동차·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일본에 한해서 이를 10%포인트 낮추기로 한 것이다.

당초 일본은 지난 7월 22일 5500억달러(약 766조원) 대미 투자, 자동차·쌀 시장 개방을 약속하며 상호 관세와 자동차·부품 품목 관세를 모두 15%로 낮추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미·일 양국은 세부적인 사항을 놓고 이견을 보이면서 실제 인하가 지연돼 왔다. 그러나 이날 행정명령 서명으로 관세 협상을 일단락 지은 것이다.

미 백악관은 “미국서 생산되지 않는 천연자원이나 의약품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부문별 조치를 적용해 상호 관세를 0%로 조정할 수 있다”며 “일본 정부가 미국산 쌀 구매량을 75% 늘리고 옥수수·대두 등 연간 80억달러어치 미국산 농산물과 관련 제품을 구매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김현국

◇비상 걸린 한국車

미국이 일본산 완성차에 대한 15% 관세 부과를 공식화하면서, 한국 완성차 업계는 직격탄을 맞게 됐다. 25% 관세로 인해 이미 실적 악화, 대미 수출 감소를 겪고 있는데 일본과의 관세 격차로 인해 시장점유율마저 흔들릴 상황이 된 것이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4월부터 부과된 25% 관세로 올 2분기(4~6월)에만 영업이익이 1조5000억원 감소했다. 미리 출고돼 미국에 쌓여 있던 재고가 완충 역할을 했는데도 타격이 컸다. 미국 관세로 줄어든 이익이 현대차 8282억원, 기아 7860억원에 달했다.

한국산 자동차는 올해 4월 전까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관세 혜택을 누렸다. 일본과 유럽산 자동차는 기본 2.5% 관세를 무는 구조 속에서, 한국차는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 일본이 15% 관세를 적용받게 되면, 한국차는 일본차보다 10%포인트 더 높은 관세를 물어야 한다. 이를 모두 가격에 반영하면 한일 간 자동차 가격 역전 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현대차 아반떼는 미국 내 판매 시작 가격이 2만2125달러로, 일본 도요타의 코롤라(2만2325달러)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한국(25%)과 일본(15%)에 부과되는 관세를 반영해 가격을 올릴 경우 상황이 뒤바뀐다. 아반떼는 2만7656달러가 되면서 코롤라(2만5674달러)보다 비싸진다.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결국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시장점유율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관세로 인한 현대차의 3분기 이익 감소분이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SK증권은 보고서에서 “3분기 관세 비용만 현대차는 1조원, 기아는 9000억원, 현대모비스는 800억~9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현국

◇다시 쫓기는 한국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 행정명령 단계까지 마치면서, 한국은 다급한 처지가 됐다. 유럽연합(EU)도 자동차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끌어내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반면 한국은 농축산물 시장 개방과 대미 투자 펀드의 구체적인 조성 방식, 디지털 교역 의제 등에서 미국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농축산물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한국에 쌀 시장 개방 확대를 줄곧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농민 반발 등을 우려해 이를 들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장상식 무협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미 양국이 농산물 시장 개방에서 현안 조율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약속한 2000억달러(약 278조원) 규모 대미 투자 펀드의 조성 방식을 두고도 이견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자신들이 직접 투자 대상을 정하는 방식을 원하는 반면, 우리 정부는 대출·보증을 포함한 ‘금융 패키지’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