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산업통상자원부의 자원·원전 산업 정책을 뺀 나머지 에너지 조직 대부분을 환경부에 합치는 초안을 마련한 가운데, 업계와 학계에서는 ‘규제’ 입김이 세지면서 국가 주력 산업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기후와 에너지를 섣불리 합쳤다가 제조업 경쟁력 붕괴를 경험한 독일·영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3일 민주당은 비공개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정부조직 개편 방안을 공개했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산업부 2차관 산하 에너지 조직 대부분을 환경부로 넘기는 방안을 의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부에 남는 에너지 조직은 자원산업정책국과 원전산업정책국이다.
기업들은 에너지 정책을 환경부가 쥔 상황에서는 전력망 확충,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 등의 의사결정이 환경 논리와 수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 에너지 기업 관계자는 “대통령 공약인 에너지 고속도로만 봐도 전국 산지·바다에 송전탑과 해상풍력기, 전선을 깔아야 한다”며 “한 부처에서 공사도 하고 환경영향평가도 한다는 말인데 속도가 나겠는가”라고 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석탄·LNG(액화천연가스) 등의 전력 생산 과정에 대한 환경 규제가 강화될 것이고, 이는 발전 공기업의 전력 구매 비용 증가로 직결될 것”이라며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이 산업·에너지 정책과 결합하면서 한국전력의 재생에너지 구매 의무(RPS), 배출권거래제 부담도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의 전기 요금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전기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지금까지는 산업 경쟁력을 고려하면서 에너지 가격 정책을 펼쳐왔는데, 에너지가 기후와 합쳐지고 무게중심이 규제로 넘어가면 산업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에너지·기후 비용을 올리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 앞서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실패로 끝난 독일과 영국 사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의 대표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지난 2021년 산업·에너지·기후를 합친 경제기후보호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후 에너지와 기후 관련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고 제조업 경쟁력이 무너지는 부작용을 겪었다. 독일은 올해 5월 다시 기후를 환경부로 이관하고 경제에너지부를 출범시켰다.
영국은 2008년 에너지와 기후를 합친 에너지기후변화부를 출범시킨 후 제조업 경쟁력 약화, 전력 공급 시설 부족, 전력 도매가격 폭등 등의 후폭풍을 경험했다. 영국은 2016년 산업·에너지·기후를 합친 비즈니스에너지산업부로 개편했다가 2023년 이를 다시 에너지 안보와 넷제로를 담당하는 부처로 바꿨다.
유승훈 교수는 “영국의 경우 제조업 약화 흐름을 돌이키기 어렵다고 보고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이어가는 전략을 짠 것인데, 한국은 제조업을 포기할 수 없는 나라”라며 “일본이 경제산업성에서 산업과 에너지를 함께 관할하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법제화한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정책의 독자적인 공간이 사라질까 우려된다”며 “기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어려움을 겪은 영국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정부 안팎에선 여당이 원전 정책 기능도 대부분 환경부로 넘기고 원전 ‘수출’ 관련 조직만 산업부에 남기는 안도 검토 중이란 말도 나온다. 원전 업체 관계자는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원전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전 산업부 산하 공기업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