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차량이 세워져 있다. 미국 현지 생산과 판매 감소 여파로 지난달 한국의 대미 전기차 수출은 작년 같은 달 대비 10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8월 우리 수출 실적은 트럼프 미 행정부발 관세의 파괴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주요 대미 수출 품목 15개 중 11개(대미 품목별 증감률은 1~25일 기준)가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기록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가른 건 ‘관세’였다. 증가세를 기록한 품목은 반도체(56.8%·8억1000만달러), 석유 제품(15.4%·3억9000만달러), 무선통신 기기(34.2%·9억4000만달러) 등 주로 관세를 면제받는 것들이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스마트폰에는 별도 품목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이유로, 석유 제품 등 에너지 상품은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반면 대미 최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는 관세 직격탄을 맞아 작년보다 3.5%(15억7900만달러), 자동차 부품은 14.7%(4억4300만달러) 감소했다. 철강은 무려 32.9%(1억5000만달러) 감소해, 올해 최악의 대미 수출 실적을 받았다. 철강은 지난 3월 가장 먼저 품목 관세를 부과받은 뒤에도 감소 폭이 20%를 넘지 않았지만, 관세가 50%로 갑자기 오른 지난 6월(-25.9%)부터는 수출을 포기하는 기업이 급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철강이 포함된 만큼 관세를 부과받는 일반 기계(-12.8%), 가전(-26.8%) 등의 감소 폭도 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제로 관세 효과가 사라지고, 고율 관세가 부과된 파장이 연관 산업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대미 수출, 관세 품목 위주 급감

지난달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액은 작년보다 12% 감소한 87억4000만달러로, 2023년 1월(80억590만달러) 이후 2년 7개월 만에 가장 적었다. 감소 폭도 코로나 팬데믹 이후 5년여 만에 최대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에도 관세 예외 품목인 반도체·석유 제품·무선통신 기기 등은 대미 수출이 15%가량 증가했다”며 “관세 부과에 따른 영향이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30일 상호 관세를 예고됐던 25%에서 15%로 인하하고, 자동차·부품 관세도 현행 25%에서 15%로 내리는 데 미국과 합의했다. 이에 따라 대다수 수출품에 부과되는 상호 관세는 지난달 7일부터 기존의 10%에서 15%로 인상된 반면, 자동차·부품 관세(25%)는 여전히 유지되는 상황이다.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아예 협상에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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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수출 감소, 아세안이 메꿨다

지역별로는 수출액 상위 5곳 중 아세안에서 유일하게 수출이 늘었다. 아세안 수출은 작년보다 11.9% 증가한 108억9000만달러로, 최대 수출 시장 중국(-2.9%·110억1000만달러)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대만을 중심으로 반도체 수출(47%·27억달러)이 큰 폭으로 증가한 영향이다. 유럽연합(EU)은 친환경차 중심으로 자동차(78.1%·5억1000만달러)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일반 기계 등은 수출이 감소했다. 전체 수출액(58억1000만달러)도 9.2% 줄었다.

그래픽=박상훈

품목별로는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가 미·중 갈등 속에서도 AI(인공지능) 특수를 발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자동차도 EU 등 미국을 대신할 시장을 확보하며 8월 최대 기록을 세웠다. 다만, 일각에선 AI발 반도체 수요 증대 및 단가 상승으로 우리 수출 성적에 ‘착시 현상’이 생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5%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올 하반기 반도체·스마트폰에 대한 관세 부과가 예고돼 있고 철강 관세가 가전·일반 기계 등 파생 상품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하반기 기업 타격이 우려된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실제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중견기업 61.5%가 올 하반기 수출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상반기 38.7%에 비해 부정 평가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중견기업들이 하반기 수출 악화를 전망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글로벌 경기 둔화(67.5%)’와 ‘관세 부담 증가(53.7%)’였다. 조사는 지난 7월 29일부터 지난달 12일까지 보름간 전자 부품, 자동차 등 주요 수출 업종 중견기업 200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