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발 글로벌 조선 업계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한미 정상회담을 신호탄으로 한국 조선 업계는 대규모 재편과 투자에 착수했다. 조선 기술력 세계 1위 HD현대는 지난 27일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합병 계획을 전격 발표했다. ‘해양 방산 복합체’로 탈바꿈하겠다는 포석이다. 전날 한화그룹은 마스가의 현지 거점인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에 50억달러(약 7조원)를 투자하는 현대화 계획을 발표했다. 연간 1~1.5척인 건조 능력을 20척으로 올리고 블록 생산 기지 신설, 스마트 야드 도입 등을 통해 현지 공급망 복원 및 K조선 기술력 현지화에 나선다는 청사진이다.
한국 조선 업계의 발 빠른 행보는 미국의 정책 전환과 맞물린다. 미국 정부는 조선 산업 부활을 위해 전례 없는 정책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반스·톨레프슨법’(미국에서만 군함을 건조하도록 한 규정)을 우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달 초 방미한 우리 방위사업청 관계자가 미 해군부와 이런 방안을 논의했고, 이후 세부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협력이 급물살을 타면서 지난 50여 년 지속돼온 한·중·일 조선 3강 체제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지난 반세기 글로벌 조선 시장의 패권은 건조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결정했다. 마스가의 등장은 공급망·해군력·기술 주권이 결합된 ‘전략 산업’으로의 변화를 예고한다. 누가 더 싸게 배를 짓느냐가 아니라, 누가 서방 안보 동맹의 공급망을 장악하느냐 싸움이 될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마스가는 앞으로 30년간 약 300척에 이를 미 해군의 함정 수요와 나토(NATO) 동맹국의 군함 조달 수요까지 포괄할 전망이다.
◇글로벌 조선업 ‘가격’ 대신 ‘정책’ 경쟁
마스가에 가장 민감한 나라는 조선 건조량에서 압도적 1위인 중국이다. 마스가 등장 이후 중국 관영 매체들은 수차례 비판적인 입장을 내왔다. 중국은 지난 20년간 글로벌 조선 시장 점유율을 70%대로 끌어올렸지만, 미·중 전략 경쟁 심화와 마스가의 부상은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 1·2위 조선사(중국선박공업그룹·중국선박중공그룹)의 합병을 승인하며, 세계 최대 국영 조선사 체제를 가동했다. 민군 융합을 통한 압도적인 생산 능력과 거대한 내수를 바탕으로 마스가 견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일본도 자국 조선소 통합과 국영 조선사 설립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미 해군의 MRO(유지·보수·정비) 사업 등을 통해 경쟁의 한 축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일본에서 ‘사양 산업’이라 불리던 조선업이 이제 국가 안보와 해양 패권을 가를 전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마스가 순항에 최대 관건은 1500억달러 규모 마스가 펀드 조성과 운용이다. 양국 정부는 1500억달러 규모 펀드를 조성해 미 조선업 부흥에 지원한다는 큰 틀의 합의는 했지만, 기금 조성 및 운용 거버넌스, 직접 투자 규모 등 세부 사항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합의 내용을 명문화하는 데도 투자 펀드 내용이 가장 큰 걸림돌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한국이 최대한 많이 직접 투자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논의가 지속될 예정으로 명문화 시점을 아직 특정하기 이르다”고 했다.
◇마스가 펀드 운용, ‘시험대’
당초 마스가 프로젝트는 한국 조선업의 미국 진출을 돕고, 이를 통해 미국 조선업을 재건하는 윈윈 모델을 지향했다. 그러나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27일(현지 시각) 방송에서 ‘미 정부가 조선업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동상이몽’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인텔에 이어 엔비디아 지분 인수 의향을 묻는 질문에 “현재로서는 논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며 “조선업처럼 우리가 재편하고 있는 다른 산업 분야는 (지분 인수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가 한국 기업을 염두에 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맥락상 한국의 투자금이 미국의 전략적 목적에 따라 사용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도 최근 CNBC 인터뷰에서 “일본, 한국 그 외 다른 국가들의 자금으로 국가 경제 안보 기금(펀드)이 조성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그들이 미국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구축에 자금을 댈 것”이라고 했다. 마스가 프로젝트가 한미 양국에 ‘윈윈’이 될지, 아니면 미국의 전략적 목적에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일방적으로 동원되는 결과를 낳을지는 향후 협상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