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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기술 격차 심화 등 산업 전반의 복합적인 위기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혁신 경영’을 앞세워 생존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 조직, 사업 구조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혁신을 시도하며, 미래 산업 질서를 재편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신기술로 산업 재정의

‘기술’은 이제 더 이상 생산성을 높이는 수단만이 아닌,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로봇, 디지털 트윈 등 차세대 기술을 기존 사업에 접목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방식의 산업 운영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업장 내 제조봇∙키친봇 개발로 확보한 기술을 첨단 휴머노이드 개발에 활용하는 ‘기술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삼성은 로봇 분야를 미래 산업 격전지로 보고, 선도적 입지를 구축해나간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싱가포르 최초 전기차 생산 공장인 HMGICS에 AI, 로봇, 디지털 트윈 기반 초자동화 생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조립 및 검사 공정의 약 70%가 자동화되어 있으며, 약 200대의 로봇이 공장 내에서 작업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런 혁신을 통해 인간은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집중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슈퍼널의 차세대 UAM(도심항공교통·Urban Air Mobility) 기체 S-A2.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 중인 5인승 항공기다. /현대차그룹 제공

SK그룹도 AI를 반도체, 정유, 화학, 통신 등 주요 계열사 사업에 접목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SK텔레콤과 함께 자체 AI 플랫폼인 ‘명장 AI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핵심 증착 공정에 AI를 접목하고, 공장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정보를 자동 분석하는 스마트팩토리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5′ 전시장에서 SK텔레콤이 선보인 'AI 데이터센터'의 모습. /SK그룹 제공

LG는 자사가 개발한 AI인 ‘엑사원(EXAONE)’을 사내 업무, 산업 분석, 바이오 등 각 분야에 전방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공개한 ‘엑사원4.0’ 모델은 지난달 글로벌 AI 성능 분석 전문 기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의 인텔리전스 지수 평가에서 한국 모델 기준 1위, 글로벌 11위에 오르는 등 경쟁력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사 최초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MRO(유지·보수·정비)’ 시스템을 도입했다. 항공 산업에도 AI를 접목해 항공기 정비, 연료 수요 예측, 비행경로 최적화 등 기존에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스마트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이 기술들은 단순히 생산성을 올리는 수준을 넘어, 사업 구조 자체를 데이터 중심·AI 기반으로 전환시키는 본질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산업계의 평가다.

◇초격차 확보 위한 R&D 투자

기술 격차는 결국 투자와 인재 확보에서 나온다. 각 기업은 전사 차원의 R&D(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미래 기술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R&D는 단순 기술 개발을 넘어, 미래 시장을 주도할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연간 기준 사상 최대 규모의 R&D투자(35조원)와 시설투자(53조6000억원)를 이어갔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 조직을 기술 상용화 시기에 따라 사업부·연구소·종합연구소로 3단계로 체계화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국내 특허 7804건, 미국 특허 9228건 등을 등록했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서울 R&D(연구개발) 캠퍼스'의 모습. 삼성전자 제품의 소프트웨어(SW)와 디자인 연구의 핵심 거점이다. /삼성전자 제공

AI용 초고성능 D램 ‘HBM4’로 기술 경쟁력을 입증한 SK하이닉스는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5~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서 ‘2025 SK 글로벌 포럼’을 개최하는 등 우수 인재를 확보해 성장의 발판을 닦고 있다.

LG는 엑사원을 기반으로 정밀 의료 AI, 단백질 구조 예측, 바이오 신약 개발 등으로 R&D 활용도를 넓히고 있고, 현대차그룹도 UAM(도심항공교통), 로보틱스, 자율주행, 친환경차 등 핵심 미래 모빌리티 기술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신시장 개척도 본격화

기술 경쟁력 확보와 함께 새로운 산업 분야, 새로운 시장에 대한 진입도 본격화하고 있다. 기업들이 기존 주력 산업의 한계를 넘어, 미래 유망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롯데는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아프리카와 인도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아프리카 가나에서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조달을 위해 농장 재배 환경 개선 사업인 ‘지속가능 카카오 원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작년 7월 인도 자회사 롯데 인디아와 인도 빙과 업체 하브모어의 합병 절차를 완료했다.

GS그룹도 미래 사업과 M&A 기회에 적극 도전하고 있다. GS그룹은 국내 GS벤처스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GS퓨처스 등 벤처투자법인(CVC)을 통해 산업바이오, 기후 기술 등 그룹이 주목하는 미래 사업 분야의 스타트업을 발굴하며 혁신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