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공동 성명을 통해 차·부품 관세 15% 등을 명문화하려 했으나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산 차·부품에 대한 관세 인하(25%→15%) 시점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한국에 추가 압박을 계속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양국 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성명 발표 여부나 내용, 문구에 대한 협상을 8월 내내 했지만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안보 분야 협상이 남아 있는 데다, 3500억달러 규모 투자 펀드의 조성·운용 방식, 자동차 관세 포함 여부 등 여러 사안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탓이다.
실제 전날 정상회담 직후 강훈식 비서실장은 공동 합의문 계획을 묻는 질문에 “하나가 끝난다고 끝이 아니라 계속된 협상 과정 속에 있는 것”이라며, 이게 ‘트럼프 통상 협상의 뉴노멀’이라고 답했다. 협상 타결 이후 10차례 넘게 장관급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고도 했다. 협상 결과를 명문화하는 과정에서의 진통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 25%가 매겨지는 차·부품 관세 인하를 확실히 하고, 추후 반도체 등에 대한 관세 역시 15%로 고정하길 원하지만, 미 측은 인하 시기를 못 박지 않고 추가 조건을 다는 모양새다. 또 자국에 유리한 구조로 3500억달러 규모 투자 펀드 관련 양해각서(MOU)를 맺는 것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은 한국 25%, 일본·EU엔 27.5%의 차·부품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세 나라 모두 미국과 협상해 차·부품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했지만 미국은 시행을 미루고 있다. 최근 공개된 미국과 EU(유럽연합)의 무역 협상 공동성명을 보면, 미국은 ‘EU가 미국에 약속한 합의 이행 관련 입법안을 제출하면 그달에 차·부품 관세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EU는 미국산 공산품에 대한 관세 철폐, 일부 미국산 해산물·농산물에 대한 수입 확대 등을 약속했다. EU가 이를 시행하기 위한 법안을 실제 발의하는지 확인한 뒤 법안이 제출된 그달부터 관세를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일본도 차·부품 관세 인하 시점을 확언받지 못한 채, 미국 요구에 따라 5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펀드 MOU를 체결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은 “이번 달 하순 일본의 대미 투자 펀드 관련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 또한 관세 협상 타결 뒤에도 추가 압박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당일인 지난 25일(현지 시각)에 이어, 26일에도 “한국 정부가 (추가 협상 등) 뭔가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결국 합의를 준수했다”며 “우리는 합의를 그대로 지켜냈다”고 했다. 3500억달러 규모 투자 펀드, 차·부품 관세 인하 및 시점 등 현재 미국 측에 유리하게 되어있는 내용에 대해 우리 정부가 추가적으로 후속 요구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시사한 것이다.